“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문득
자신을 낮추면 자연적으로 섬길 수 있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랑이 없으면 자신을 낮춰도 섬길 수 없겠다는 저의 생각입니다.
섬김은 존경과 함께 최고의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섬김은 겸손이 밑바탕 돼야만 가능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겸손과 낮춤은 같은 것일까?
겸손의 엄밀한 뜻은 낮춤이 아닙니다.
겸손은 자신을 높이는 것도 아니지만 낮추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도 아니고 높이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섬김은 겸손과 사랑 가운데서 사랑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사랑이 극진하면 할수록 상대의 눈높이에 자신을 맞추잖습니까?
아기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그러잖습니까?
아이가 알아듣도록 아이의 말을 하고,
아이에게 눈을 맞추기 위해 숙이잖습니까?
그래서 섬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전에는 저의 교만을 반성했는데 이제는 사랑의 부족을 반성합니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섬김의 리더쉽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느님 외에 아무도 아버지, 스승, 선생이라고 부르지도 불리지도 말라고 하시는데
엉뚱한 생각인지 모르는데, 아버지라고 불리지는 말아야 하지만
어머니라고 불리는 것은, 괜찮다고 하시는 말씀처럼 들렸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아이에게는 윗사람이지만
어머니의 리더십은 아버지의 리더십과 다르지요.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서로를 돌봄과 관련하여 얘기하며
어머니처럼 서로 돌보라고 당부합니다.
“어머니가 자기 육신의 자녀를 기르고 사랑한다면 각자는
자기 영신의 형제들을 한층 더 자상하게 사랑하고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형제들 가운데 누가 병이 나면 다른 형제들은
남이 자기 자신을 돌보아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은 쉬운데 어머니의 사랑이 제겐 왜 이리 어렵습니까?
지금은 그래도 많이 어머니다워지고 있지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옛날엔 제가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기도 하고
생물학적으로 호르몬의 문제라고도 변명하기도 했지만
프란치스코는 남자였어도 사랑이 극진하니
어머니의 사랑을 어머니들보다 더 잘 실천하였잖습니까?
그런데도 계속 핑계를 대고 변명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핑계 대거나 변명하지도 말고,
억지로 자신을 낮추려 하지도 말고,
겸손한 것처럼 위선을 떨지도 말고,
다만 더 사랑하는 쪽으로 방향 잡고 노력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