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표현이
의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을 보면
그 상은 우리가 하느님께 받을 수 있는
좋은 그 무엇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받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서 먼저 우리는
예언자가 되거나
의인이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받아들이는 것은
한 사람을 그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예언의 능력을 받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미 다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습니다.
즉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그가 특정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가지만
그와 나는 모두 예언자로서,
혹은 의인으로서
받을 상을 받게 됩니다.
모두가 예언자일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가 똑같을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 다르지만
그리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우리 각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하느님께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능력이 없는 내가 능력이 있는 그를
질투할 필요도 없고
그것으로 미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없는 능력을 키우기에 앞서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 능력이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그것은 결국 우리에게 득이 되는 일입니다.
성급하지 않게 천천히
한 명 한 명 받아들이는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