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 금요일-2020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살다 보니 느닷없이 ‘길’과 ‘진리’와 ‘생명’ 중에서 주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주님이시기를 나는 주님께 바라고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길이신 주님?
진리의 주님?
생명의 주님?
진리의 주님과 생명의 주님 그 어느 것도 아니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저는 주님께서 길이신 주님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길이시라는 것 안에 주님은 진리의 길이시라는
뜻이 같이 들어 있고,
진리의 길이시기에 생명의 길이시라는 뜻도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얘기들을 다 해야 하지만
오늘은 길이신 주님에만 집중하여 보겠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길이시라는 것이 만일 부산 가는 길이라면
탐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부산 가는 길은 예수님 아니어도 알려줄 사람 많고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더 잘 알려주니 말입니다.
길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성취의 길이 있고,
만남의 길이 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일하러 가는 길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성취의 길을 가기보다
만남의 길이요 사랑의 길을 가고 싶은데
그것도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가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아버지께로 가시는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기만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랑의 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리고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길이 되고 싶습니다.
적어도 남이 가는 길의 훼방꾼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께 가는 길은 당연히 못되고,
다만 프란치스코에게 인도하는 길이고는 싶습니다.
그렇게 제가 누군가를 프란치스코에게 인도하면
프란치스코는 그를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할 것입니다.
클라라는 유언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셨고,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고 본받은 이셨던 우리 사부 프란치스코께서
말과 모범으로 이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가르쳐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