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8부 수요일-2018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마음의 굼뜸
굼뜨다는 것은 느리다는 뜻이 있습니다.
보통 동작이 굼뜨다고 하는데 오늘 주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마음이 굼뜨다고 하고,
마음 중에서도 믿는데 마음이 굼뜨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마음이 굼뜬지
오늘 복음은 아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몇몇 여자가 깜짝 놀랄 일을 전했는데 죽은 예수의 시신이 없어졌고,
천사들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부활하셨기 때문이라는 거였으며,
여자들의 말뿐 아니라 몇몇 제자들도 가봤는데 그들도 못 본 겁니다.
그렇다면 이 제자들은 왜 이렇게 믿는 데 마음이 굼뜬 것입니까?
그리고 이들만 이렇게 믿는 데 마음이 굼뜬 것입니까?
그렇지 않지요. 사실 우리도 믿는 데 굼뜨고
특히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을 믿는 것이나
죽음에서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아 굼뜨게 마련이지요.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대체로 실망이나 절망은 빠르지만
그 절망에서 희망을 되찾거나 부활을 믿는 것은 굼뜹니다.
왜 그럴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얕은 희망, 곧 기대 때문입니다.
우리는 깊은 희망을 가지려 하지 않고 얕은 희망인 기대를 가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대란 대부분 손 안 대고 코를 풀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저 어려움 없이 좋은 것을 손에 넣게 되기를 기대하고
고통이라는 대가 없이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하며,
제자들처럼 수난 없이 영광만 있기를 기대하고,
심지어 그 좋은 것을 남이 공짜로 주기를 기대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공짜로 좋은 것을 얻으려는 마음을 가지고서는
절망의 마음이 쉽게 희망의 마음으로 돌아서기 어렵고,
그래서 부활이나 희망의 상황을 믿는 데 굼뜨게 되지요.
사실 큰 희망이랄까 위대한 희망은 겨울을 이겨낸 이 봄의 꽃들처럼
온갖 역경과 절망을 이겨내고 피는 겁니다.
그러니 좋은 것을 쉽게 얻으리라고 기대하고 희망하던 사람이,
다시 말해서 그런 기대와 희망이 습관이 된 사람이
절망과 죽음을 이겨내야 하는 희망과 부활의 믿음을 갖기란
혹독한 추위를 각오하지 않고 봄꽃을 피우려는 것처럼 쉽지 않지요.
그래서 아무리 예언자들이 예언을 하고,
주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를 하고,
천사들이 부활을 알려줘도 믿는 데 마음이 굼뜰 수밖에 없습니다.
수난 없이 영광만을 찾는 사람에게
수난을 거쳐야만 갖게 되는 부활의 영광을 믿는 것은 굼뜬 정도가 아니라
어쩌면 아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아닌지 묵상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