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충고를 한 사람에 대한 화로 나타납니다.
나에게 들어온 충고도
외부 자극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그 자극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자극에 대해서 반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자극의 강도에 비해서
어마어마하게 큰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작용-반작용의 관계가 아닙니다.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건드려져서
내 안에서 더 커진 것입니다.
자극에 비해 더 큰 반응이 나오는 것은
내 안에 무엇인가가 있음을 반증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날카롭게 반응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틀리다면,
단순히 그 말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말씀을 듣고 싶지 않기에,
예수님의 입을 막고 싶기 때문에
실수를 유도하는 질문을 계속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보면
별 것 아니었다고 생각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 당시에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이 순간이 나를 돌아보고,
나를 직면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순간 나를 바라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감정에 싸여
감정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상황입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감정이 좀 가라앉은 다음에
무엇이 나를 건드렸고,
나의 무엇을 건드렸는지 볼 수 있습니다.
내가 감추고 싶었던 나의 약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약점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한 번 보았다고
바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약점을 마주대하는 순간이 거듭되면서
점점 더 나를 알아가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도 율법 학자나 바리사이들처럼
나의 약점을 건드리는 사람에게
공격하고 싶어합니다.
너무나 아프고 너무나 힘들기에
공격성이 드러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공격으로 끝나지 말고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로 넘어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