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정결례 법을 거스름으로
자기를 집에 초대한 바리사이의 심기를 거스릅니다.
우리 생각에, 초대를 받은 손님은 가능하면 집주인이 원하는 것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이 예의인데, 오늘 주님께서 그것을 따르지 않은 것은
예의가 없고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누굴 집에 초대한 것은 사랑을 보인 것인데
그 사랑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게는 그런 주님의 행위가 의도적인 도전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가 싫어할 줄 뻔히 아시면서 그렇게 하신 겁니다.
당연히 그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뜨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고정관념 또는 관습의 타파입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
그래서 행동하시는 데 거침이 없으신 분으로서의 행동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이 매이지 않음과 거침없으심을
기존 질서를 거부한 히피들의 저항 정도로 폄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행동은 그저 개인의 저항이 아니라
제가 볼 때 위대한 사랑 혁명 또는 사랑 운동입니다.
본질을 생각하고,
본질로 돌아가자!
뭐 이런 위대한 혁명입니다.
무엇을 하든 본질은 사랑이고,
사랑이라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낡은 관습과 고정관념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주님의 사랑 혁명을 정결례의 낡은 관념과 관습으로 가두려고 하면
그 정결례라는 관습과 관념의 부대는 터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부대 안에는 사랑을 담아야 하고 사랑이 담겨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일갈하십니다.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사실 우리 속에 사랑이 담겨있으면 사랑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결례 관습에 얽매여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지 않고
사랑 실천에 매진할 것입니다.
우리의 속에 사랑이 담겨있고 그래서 사랑으로 가득하면
우리의 손은 더러워도 사랑을 실천할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느라 손이 깨끗할 겨를이 없을 겁니다.
사랑으로 아이의 코를 닦아주느라,
사랑으로 걸레를 빨고 걸레질하느라,
손은 더러워지지만, 오늘 말씀대로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입니다.
겉은 깨끗하지만,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청소하려고
우리의 손은 더러워질 수밖에 없지만, 속은 사랑으로 깨끗하고 따듯한
우리가 되라고 주님께서는 오늘도 도전하십니다.
그 도전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사랑 혁명에 동참하시겠습니까?
새 술을 담는 새 부대가 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