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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 3 주일- 따듯한 동행

by 당쇠 posted May 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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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느낌이 좋지요?
동반.
역시 느낌이 좋고 따듯하지요?
이것은 그러면 어떻습니까?
동반 자살.

정말로 자살하고 싶은데 혼자 하는 것은 두려워 못하는 사람에게는
자살의 동반자도 고맙겠지요?
어떤 경우 우리 인간은 혼자 천국 가는 것보다는
같이 지옥 가는 것을 택하기도 합니다.
그 경우 혼자 가는 것이 그에게는 지옥보다 더 지옥인 셈입니다.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느니
그가 가는 곳 그 어디, 지옥까지라도 따라 갈 거라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그 극진한 사랑에 차라리 성스러움을 느낍니다.

50여 년 전 저는 어린 나이에 가까운 두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할머니의 죽음과 젊은 연인의 죽음입니다.
수명을 다한 저의 할머니의 죽음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동반 자살로 마감한 이웃 형의 죽음입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죽음보다 더 강한 사랑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좀 억지스럽다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죽음도 동반자살입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실패한 동반자살입니다.
주님은 죽음의 잔을 마시면서
너희도 내가 마실 잔을 같이 마시겠냐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같이 마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진짜 죽음의 상황이 닥치자 제자들은
같이 죽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죽어 사는 주님의 길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고,
같이 죽을 만큼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길에 제자들은 동반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제자들은 주님의 길을 버리고 자기의 길을 갑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떠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길입니다.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초대에 따라 나섰다가
주님을 잃고 망연자실한 자의 옛날로 돌아감입니다.

저는 이 심정을 너무도 잘 압니다.
신부가 되겠다고 수도원에 들어왔다가
나 같은 놈은 신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수도원을 나왔을 때,
그 일생의 목표가 사라졌을 때의 그 막막함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제가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주님을 따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부가 되는 제 성취의 길을 가려고 한 것이지
진정 주님과 함께 하기 위한 길을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속았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늦게나마 저의 속셈이 다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가 주님께서 다시 나타나실 때입니다.
자기의 거짓 열망을 깨닫고
거짓 열망 뒤에 숨어 있는 자기 욕망을 직시하고,
어쩔 수 없이 그 욕망을 포기하게 되었을 때,
바로 이때, 저도 그렇고, 제자들도 주님이 나타나십니다.
저나 제자들은 주님의 길에 동반하지 않았는데
주님이 저와 제자들의 길에 동반하십니다.

함께 걸으시며,
이제 차근차근 모든 것을 깨우쳐주시고,
무엇보다도 제자들 안에 새로운 사랑의 불을 일으키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함께 묵어가자고 주님을 초대합니다.
감히 따르겠다고는 못하고 당신이 함께 해 달라고 초대합니다.
그 초대에 주님이 기꺼이 응하시어 함께 유숙하시고
말씀과 함께 빵을 떼어 주며 기운을 차리게 하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마음이 타오릅니다.
죽었던 사랑이 부활한 것입니다.
아니 거짓 열정이 죽고 참된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부활이 무엇입니까?
주님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다시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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