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바로 수광즉어유(水廣則魚遊)!”
+평화를 빕니다.
형제님들 혹시 수광즉어유 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이 말은 물이 깊고 넓으면 고기들이 모여 논다는 뜻으로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사람들이 따름을 비유해 이르는 말입니다.
고등학생시절 이 말을 알게 되고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마음속에 수광즉어유라는 말을 지니고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첫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물러가십니다.
그래도 갈릴래아, 유다,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 큰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이 당시에는 자동차도 KTX도 없고, 비행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걸어서 이동을 했을 것입니다.
하루에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날 몇 일을 걸려서 도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먼 지방에서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예수님을 만나러 옵니다.
또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아니라 큰 무리의 사람들이라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한 명 두 명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큰 무리 몇 백 몇 천 명이 되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러 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바로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지니고 있었던 수광즉어유,
덕이 많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모이는 모습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모을 수 있을까?
어떻게하는 것이 덕을 가지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는 것이었습니다.
겉 껍데기가 아니라 속 알맹이 안에 하느님을 모셔야 합니다.
수련착복 예식이 끝나고 나서 선배형제들이 “수도복을 입고 자야된다.
이제 어디에 가든 수도복만 입고 다녀야된다.” 한마디씩 합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농담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수도복은 몸이 아니라 마음속에 입는 것 같습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마음속에 수도복을 보고 수도자답게 생각하고, 수도자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보나벤투라도 대전기 2부 1장에서 프란치스코에 대해
“그는 마음속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인성을 입었다”고 말합니다.
프란치스코는 마음속에 수도복을 입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음속에 하느님을 품고, 프란치스코처럼 마음속에 수도복을 입는다면
우리 곁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