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승천 대축일 미사 본기도는 둘중의 하나 선택해 읽도록 되어 있는데
올해는 이 본기도들을 가지고 묵상을 해봤습니다.
첫 번째 본기도는 이렇습니다.
"성자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저희를 들어 높이셨으니 저희가 거룩한 기쁨에 가득 차
감사의 제사를 바치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 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본기도는 첫 마디로 성자의 승천이 우리를 들어 높였다고 합니다.
이는 당장 질문을 자아냅니다.
성자의 승천은 성자를 들어 높인 것 곧 성자의 영광이지 어찌 우리의 영광인지.
그러나 우리는 이내 그 뜻을 알아챌 수 있지요.
성자의 승천은 성자만이 하늘로 오르심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오르심이고 우리와 함께 오르심이라고.
그렇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미워하고 싫어하셔서 우리를 버려두고 혼자 오르신 게 아니라면
우리를 위해 오르신 것이고, 먼저 오르신 것, 곧 우리를 위해 먼저 오르신 것이고,
그러니 우리를 높이신 것이 맞고 우리는 그 기쁨으로 가득 참이 마땅할 것입니다.
-일체적 관계
사실 주님께서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것부터 데려가시기 위함이었지요.
그리고 이는 주님과 우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라고 표현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일체의 관계,
마치 하느님의 관계가 삼위의 일체이듯 성자와 우리도 일체의 관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신비체론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몸이요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분 몸을 이루는 지체라고 했는데 이처럼 주님과 우리는 하나입니다.
-희망
그래서 오늘 본기도는 머리이신 주님께서 올라가신 그 하늘에
지체인 우리도 희망을 둬야 함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는데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말씀이고 그러니 참으로 행복이고 영광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희망이 있어도 거기에 희망을 둬야 그 희망이 유의미하니
이 축일에 우리는 나의 희망이 무엇인지
주님께서 선사하신 희망이 나의 희망인지 돌아볼 기회입니다.
하늘이 아니라 땅에,
천상이 아니라 지상에 희망을 둔 나는 아닌지 말입니다.
두 번째 본기도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희 구세주이신 외아드님께서 오늘 하늘로 오르셨음을 굳게 믿사오니
저희가 하늘에서 아드님과 함께 길이 살게 하소서."
두 번째 본기도는 하늘에 희망을 두고 땅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주님과 함께 길이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지금 월피정을 위해 한달에 한 번 오는 홍천 <여기 피정의 집>에 와 있는데
이 집에는 제가 좋아하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습니다.
"땅에서 하늘을 살자!"
그렇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땅에서 하늘을 살아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보다 앞서 가신 주님께서 계신 곳,
먼저 가셔서 우리 자리를 마련하신 곳으로 우리는 가야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궁극적 기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 본기도를
우리는 오늘 주님 승천 대축일 뿐 아니라 늘 바쳐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저보다 연세 높으신 분들은 특히 그리고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