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춘기 고등학생 때 인생 문제로 고뇌가 크고,
하느님 존재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서 방황할 때
저는 두 분처럼 되고 싶었는데 아오스딩 성인과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아오스딩 성인은 크게 방황하고 종교 편력도 하며 방탕하게 살았지만
어둠이 짙었던 만큼 빛도 강렬하게 발견한 분이었기에 저도 그리되고 싶었던
것이고 그래서 저도 일부로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볼까 생각도 할 정도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주님을 극렬이 반대했지만
오늘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의 은총으로 극적으로 주님을 체험하고
주님의 선택을 받아 주님의 전사가 되었던 것처럼 저도 그리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도행전에서 바오로는 새로운 길을 가는 신자들을 잡으러 가다가
땅에 엎어진 뒤 이제 자신이 그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는데
한번의 엎어짐으로 바오로처럼 제가 새로운 길을 가게 되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 길을 가면서 겪게 될 어마어마한 수난도 바오로처럼 감수하고 감당할 것인가?
오늘 사도행전은 바오로의 사명과 미래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여기서 바오로가 그릇이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는 큰 인물을 얘기할 때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얘기하곤 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그릇이 크면 그 그릇에 사랑을 그만큼 많이 담겠지요?
또 이해력도 크고 포용력도 클 것이며 그리는 꿈도 크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그릇이 크면 수난의 그릇도 크지 않겠습니까?
사실 사랑이 크면 받아야 고통도 큰 법이지요.
오늘 주님께서도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이것을 실감나게 얘기하면 소가 자기의 살과 선지를 내어주듯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며 당신을 다 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래도 이런 주님과 바오로처럼 사랑의 그릇이 큰 사람이길 희망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