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 회개의 실천 중에서 어제는 자선에 대해서 얘기한 다음
오늘은 기도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하시는 말씀에 대해 얘기하고,
복음은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진정 기도입니다.
아오스딩 성인이 기도는 하느님과 대화라고 했는데 바로 그거지요.
대화란 쌍방이 얘기를 나누는 것이니
우리가 진정 올바른 기도를 한다면 나의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하고 들을 뿐 아니라 경청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내 말만 하고 경청은 아니 하지는 않는지요?
경청을 하더라도 하느님 말씀 먼저 듣고 내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얘기 먼저 하고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닌지요?
사실 우리의 많은 기도가 이런 식입니다.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나이다.'가 아니라
'주님, 간절히 청하니 제 기도 굽어들으소서.'라고 하거나
'간절히 청하오니 어서 빨리 들어주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가 사순절에 회개한다면 기도에 있어서도 회개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기도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어서 빨리 저의 기도 들어주소서.'라고만 하던 내가
'주님, 말씀하소서. 당신 종이 듣나이다.'로 바뀌는 겁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오늘 듣게 되거든 너희 마음 무디게 가지지 말라"는
사순 시기 성무 일도 초대송 후렴처럼 주님의 말씀이 들리면 언제고
즉시 들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대기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떠드는 것보다 듣는 즐거움이랄까 기쁨이 있어야겠지요.
자기 혼자 싫컷 떠들고, 그러고나면 허전하던 사람이 듣는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한 것처럼 하느님 말씀 듣는 것이 그렇게 달콤하고 맛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한순간에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랫동안 빈 기도와 헛된 기도를 해오던 내가 앞서 본 것처럼
<기도 허무>를 체험하다가 어느날 문득 허무한 마음에
하느님 음성이 들리는 놀랍고도 달콤한 체험을 거쳐야 합니다.
떼를 쓰고 달라고 청했을 때는 들어주시지 않는 것만 같았는데
마음을 비우고 나니 청하지도 않았는데도 주님께서 들어주시는,
거저 받은 체험 곧 은총 체험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주님 말씀처럼
빈 기도를 하는 대신 빈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샅샅이 살피시고 나를 다 알고 계시는 주님,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을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주님,
그 주님을 체험한 다음 이제 마음을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