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은 동일화하는 것이라는 것이 오늘 가르침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진정 자신과 동일화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는 자식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진정 고마워하는데
자식에게 잘해주는 것이 마치 자기에게 잘해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실로 부모는 자식의 모든 것에서 자신과 동일화합니다.
자식이 자랑스러운 일을 하면 자기가 한 것인 양 자랑스러워 하고,
자식이 부끄러운 짓을 하면 자기가 한 것인 양 부끄러워 하잖아요?
반면에 남의 자식이 잘하면 부러워는 할지언정 자랑스러워 하지는 않고
남의 자식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요.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은 남을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 틀림이 없고,
아예 남을 남이라고 생각지도 않는데
문제는 이런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지닐 수 있고 할 수 있느냐입니다.
부모는 자기에게서 자식이 나왔으니 그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그럴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적으로 그렇다면
인간적이지 않은 신적인 사랑을 지니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인간적인 사랑에 패배적으로 머물지 않고
하느님 사랑에로 도약하겠다는 불굴의 의지와 도전적인 의지가 필요합니다.
말하자면 사랑에 있어서만은 내가 감히 신이 되겠다는 도전적인 의지 말입니다.
오늘 레위기의 주님께서도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런 도전을 허락하셨습니다.
교만의 도전은 악이지만
사랑의 도전은 선입니다.
교만의 도전은 하느님께서 꺾으시지만
사랑의 도전은 하느님께서 키우십니다.
당신처럼 사랑하려는 사람에게 당신 사랑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