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굽어보시는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찬미.
오늘은 그 유명한 막니피캇 곧 마리아 찬가입니다.
찬미는 굽어보시는 하느님을 우러러보는 자만 할 수 있고
그러므로 찬가는 겸손과 믿음의 사람이 부르는 노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찬가는 우선 굽어보시는 하느님을 우러러볼 때 나오는 노래이고
그렇기에 겸손하지 않은 자의 입에서는 찬미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상상이 가지요.
교만한 자의 입에서 찬미는 절대로 나올 수가 없고,
마리아처럼 자신을 종이라고 하고 비천하다고 하는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다음으로 찬미는 비천한 나도 굽어보시는 하느님이라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비천한 사람을 하느님은
결코 깔보시는 분이 아니라는 믿음이기도 하지요.
굽어보는 것과 깔보는 것, 모두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굽어보는 것은 비천한 사람의 눈높이에 맞게 눈을 낮추며
가엾이 보는 것인 데 비해 깔보는 것은 그야말로 깔아뭉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굽어보시기도 하고 깔보시기도 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대해서도 편견이 있는데
하느님은 깔보시지 않고 굽어보시기만 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나의 찬가와 마리아의 찬가에서 하느님은 양면적입니다.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하느님 체험은 바로 양면적인 체험이어야 하고,
우리의 진정한 겸손과 믿음,
우리의 진정한 이해와 찬미,
이런 것들은 바로 양면적인 하느님 체험의 열매입니다.
양면적인 하느님을 제대로 체험한 사람만이
진정 겸손할 수 있고 올바른 믿음을 가질 것이며,
그런 사람에게서만 하느님께 대한 찬미가 나옵니다.
얼마 남지 않은 대림 시기,
우리는 주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는데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양면적인 하느님 체험이 실현되는 것이고,
그때는 마리아의 입에서처럼 찬미가 우리 입에서도 나올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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