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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의 날- 산 이와 죽은 이 구별없이

by 당쇠 posted Nov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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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례는 모든 성인의 날이나 위령의 날이나
“행복 선언”이라는 같은 복음을 듣습니다.

적어도 죽은 사람은 불행하다는 그런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고
하느님께로 간 그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뜻이겠지요.
어제 보았듯이 하느님과 함께만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기에
삶도 죽음도 문제가 아니고
영원 안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사라지기에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행복선언을 보면 두 가지 시제가 나옵니다.
현재 시제와 미래 시제이지요.
첫 번째 행복선언인 “행복하여라, 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마지막 여덟 번째 행복선언인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둘 다 모두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로 현재 시제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여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부터 일곱 번째까지 다른 행복선언은
모두 “-할 것이다.”로 미래 시제입니다.
미래에 실현될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행복의 조건인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기만 하면
지금 여기서부터 행복하지만
죽은 다음 완성된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다음 행복이 완성된다면
위령, 즉 죽은 영혼을 위로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미사 지향으로 많이 바치는 불쌍한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이겠지요.
어제 우리가 기념한 모든 성인들을 제외한 죽은 영혼들,
아직 하느님과 함께 있지 못하는 영혼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는 행복을 살 수 있는데
이 세상에 집착하여 하느님 나라를 소유하지 못하는 것처럼
죽은 뒤에도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어 떠나지 못하고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영혼들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가 산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처럼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이것이 통공의 교리입니다.
산 이도 죽은 이도 모두 하느님 안에 있기에 우리는
세상의 경계를 넘어
시간의 경계를 넘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제는 마라톤 준비삼아 오랜만에 밤 등산을 하였습니다.
오르면서 5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내내 하였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없는 지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없었습니다.
10대 때 철이 들면서 저만 아버지가 없는 것이 인식되면서
아버지가 그리워 산소에도 가고
보지도 못한 아버지를 자주 기억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졌고 기도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와서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무 추억도 없는 아버지 생각이 가끔 나고
아버지란 분이 나와 함께 있고
나를 든든하게 감싸주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그 아버지가 하느님 아버지인지,
저를 낳아준 육신의 아버지인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50년도 더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지금도 기도하고
아버지가 지금 저와 함께 계시고 감싸주심을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안에서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어 하느님 안에서 통공하는 것이겠지요.

위령성월인 11월 한 달 우리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또한 우릴 위해 하느님 면전에서 기도해주기를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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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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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마니또 2010.11.02 10:17:48
    신부님 강론을 묵상하며 저도 아버지 생각이 많이납니다.
    38년동안 한번도 제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저를 지켜주셨던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많은 빚을 지고 살았던 두 살 아래 화가였던 여동생..
    갑작스레 두 사람을 차례로 보내고 너무나 많이 슬퍼했던 아픈
    지난 날들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두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은 저희 부부의 결혼 25주년을 맞는 감사한 날입니다.
    곁에 떠나고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리워지네요..
    지난 25년동안 가정을 지켜주신 주님 감사드립니다.
    제 인생의 나머지 날들 동안에 사랑이 제 삶의 중심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
    홈페이지 요셉 2010.11.02 10:17:48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와 함께 일하시던
    수녀님들의 소임이동이 있었습니다.
    수녀님들과 숫한 세월을 살면서
    소임이동이 있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좀 익숙해 질 때쯤 되면 다시 봇 짐 싸고
    떠나고 떠나보내는 반복되는 수도자들의 삶은
    자연히 인간관계나 일에 있어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해져 자신도 모르게 냉정한 사람,
    차가운 사람으로 비춰지기고 하고 또 타고난
    성향이 맺고 끊는 수도생활을 선택하는데 다소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하게 됩니다.

    수도자가 인간적인 정에 매이면 죽도 밥도
    아닐 수 있겠다 싶어 때론 그 차가움에 데이면서도
    서운함 보다는 하느님의 것과 나의 것을 분별하는
    질 높은 배움의 현장이다 싶은 거지요.

    이렇듯이 영원히 살기를 원하면서도
    영원히 살 수 없는 그 날의 당혹스러움을 줄여
    나가기 위해 떠 날것을 연습하는 수도자들의 삶이 있는가하면,

    저처럼 세속에 살면서 영원히 살 것처럼
    모아들이고 움켜쥐고 똬리를 틀고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움쳐 쥔 것들을 모두 놓아두고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사람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죽음 너머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이야기 하며 오늘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제시합니다.

    아마도 하느님을 믿는 믿음이 바로 이러한 까닭이 아닐까!
    곱게 물든 단풍이 미련 없이 떨어지는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묵상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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