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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보 또르또의 형제들

by 김맛세오 posted Nov 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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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평화/ 선

 

  오늘 얼핏 리보 또르또(Rivo-Torto)가 떠올려지는 건 웬일일까요.

  영(靈)의 타임머쉰이라도 타고 성프란치스코와 그의 초기 형제들이 살던 그 시절로 슬쩍 여행을 해 봅니다.

 

  마치 제 고향, '동재기(현 동작동 현충원)'의 중심부를 흐르는 작은 시냇물처럼,

 '리보 또르또'는 아씨시에서 약 1시간 거리의 뻬루지아와 로마에 이르는 사이의 평야에 위치해 있는,

뽀르치운꼴라에서 1.5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성 막달레나 나병원 가까이에 있는 곳이랍니다.

'리보 또르또'란 지명의 뜻이 '작은 시내' 혹은 '꼬불꼬불한 시내'라고 한만큼 아마도 그 뒤 수바시오 산맥을

타고 흘러내린 수맥의 하나이지요. 

초기 형제들이 그곳에 지냈을 땐(1210년 말- 1211년 이른 봄 사이?) 매우 퇴락한 작은 움막집 한 채가 있어,

원래 구루치제리회(병원 수도회)의 나병원으로 사용했던 집으로 폐가처럼 소유자가 없었답니다.  

형제들이 그곳에 거하게 된 것은, 아씨시 교외의 매우 한적한 곳으로서 "왕의 궁궐보다 오두막집이 천국에 더 빨리 간다"고

한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탁발하러 나가거나 복음을 전파하러 나가기에 더 없이 좋은 장소였습니다.  

한마디로 형제들 가난의 덕성이 가장 잘 피어날 수 있는 꽃핌의 장소라고 할까요.

  그러나 가난을 모토로 시작한  형제들의 '리보 또르또'의 삶은, 그 이상대로 살기에는 현실의 어려움이 얼마나 많이

따랐을지요! 

  늘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엄청 났음에도, 가난의 이상을 그대로 살아낸다는 것은 형제들의 대단한

어려움이었습니다.  말이 탁발이지 구걸이나 걸식을 요하는 끼니거리를 얻으려 방방곡곡 문을 두드리노라면 쉽게

얻을 때도 있지만 연명하기에도 구차한 가난한 집에서는 박대할 적도 많았습니다.

  자연의 재해로 계곡의 급류가 범람할 때면 형제들은 오도가도 못하고 움막집에 갇혀 지내야 했는 가 하면,

근처의 밭에 버려진 우거지를 주어다가 혹은 풀뿌리로 연명할 때도 있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초기 '리보 또르또'의 추억에 대한 형제들의 추억은 남달라, 그 신선하고 감미로운 가난한 삶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이룬 아름다움이었습니다.

 

  하루는 사위가 매우 조용한 한밤중이었지요.

어느 형제의 입에선가 큰 신음 소리와 함께 "아이고 죽겠네!" 지나치게 극기를 한 나머지 먹을것도 궁색한 터라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극한의 소리였습니다.  모두들 화들짝 놀라는 상황에서 프란치스코도 일어나 앉아 이렇게

물었습니다.  "형제들, 불을 켜 주시겠오?  지금 뉘 아픈 겁니까?"

  "접니다.  하도 배가 고파서요..."

  남달리 인정이 많은 프란치스코는 지그시 미소를 띄우며 남겨있는 음식을 가져오게 하였고 그 형제가 안스러워

하지 않게끔 다른 형제들도 함께 동석하게 하여 함께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들에게 추구하는 회개의 삶이

지나친 단식으로 방해를 받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먼 길 여행길의 노독으로 '레오 형제'가 그만 병이 들었어요.

마침 바로 길가에 포도나무가 있어 프란치스코는 들어가 포도 송이 몇 개를 따 레오 형제에게 먹였습니다.  덕분에

레오 형제는 원기를 회복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이 나타나 흠씬 프란치스코를 두둘겨 팼습니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여행을 하면서 이런 즉흥 노래를 부르며 웃겼다지요:

 

    "레오 형제는 배부르게 먹었고

     프란치스코는 실컷 얻어 터졌네.

     레오 형제는 맛있는 걸 먹었고

     프란치스코는 덕택에 매를 흡씬 맞았네."

 

  아마도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직한 레오 형제의 맘은 얼마나 짠했을까요!!!

 

  어느날 '리보 또르또'의 즐거운 생활에 뜻하지 않은 <나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기도와 명상에 잠겨있는 형제들의 귀에 갑자기 채찍질과 고함소리가 나면서 우락부락한 농부가 다짜고짜로

나귀를 몰고 그 움막집으로 쳐들어 오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자, 여기가 네 집이야!"  황당무례한 그의 행동에

항의는 고사하고 프란치스코는 슬픈 듯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귀 자매에게 이 움막을 양보할 때가 왔나 봅니다.  자, 형제들이여, 일어나 다른 곳을 찾아 봅시다."

  아마도 여느 사람이었다면 주인도 없는 버려진 움막집을 놓고 무슨 무례함이냐고 따졌을 법 한데도, 자유로이 부는

성령의 바랍결대로 즉시 자리를 털고 조용히 일어났습니다.   그로부터 형제들은 봄날처럼 따스했던 추억을 간직한 채 

뽀르치운꼴라(천사의 성모 마리아 성당)로 자리를 옮겨 초기 선교의 새로운 장을 마련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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