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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 26주일-걱정은 사랑의 운명

by 당쇠 posted Sep 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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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시온에서 걱정 없이 사는 자들!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 마시고, 최고급 향유를 바르면서도,
요셉 집안이 망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걱정이 많은 것은 인생을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걱정이 많은 것은 대범하지 못하고 소심한 표시이고,
욕심만 많고 낙관적이지 못한 표시입니다.
신앙적으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입니다.
이렇게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주님은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마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먹여주시고 입혀주신다.
너희 가운데 걱정한다고 해서 목숨을 한 순간인들 늘일 수 있느냐?
왜 걱정을 하느냐, 믿음이 약한 사람들!”
그러므로 성숙한 인간은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하고
특히 믿음의 사람은 쓸 데 없는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아모스서는 걱정하지 않는 자는 불행타 합니다.
그러면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왜 불행합니까?
자신을 위해서는 걱정하지 말아야 하지만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서는 걱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이겠습니다.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저는 앵무새처럼 얘기합니다.
왜 걱정하십니까?
하느님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께 선의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이 자매님보다 자식을 덜 사랑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믿지 못하십니까?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시고, 사랑이시라는 것을 왜 믿지 못하십니까?

이렇게 말하면 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물론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분도 있지만,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걱정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걱정은 사랑의 운명입니다.
걱정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랑하면서 걱정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듯이 보입니다.

사랑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염원입니까?
망하기를 바라고 나쁜 것만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 있습니까?
염원은 잘 되기를 바라고 좋은 것만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좋은 일이 생길까
걱정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을 주시는 하느님을 부모는 믿어도
지금 당장은 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선을 감당해야 하는
자식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쓴 약을 먹이는 부모가 걱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몸에 좋지만 아이가 그것을 싫다고 먹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걱정은 하느님을 믿지 못하여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염원이고 염려인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는 것은 내 배만 부르면
다른 사람이 굶주리건 말건, 병들건 말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아닌 누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요,
자기 아닌 누구에 대한 아무런 염원도 없고 그래서 염려도 없는 것이요,
사랑 없음은 물론 미움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불행하다고 합니다.
걱정과 염려가 있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어서 불행한 것입니다.
걱정과 염려가 없어 편안한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온갖 걱정과 염려가 불안하게 하여도 사랑하는 것이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라자로와 부자는 이런 행불행의 극명한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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