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보답과 행복의 함수관계
보답을 바라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면 행복할 거라고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보답을 바라는 사랑은 불행하다는 뜻도 되겠지요.
그래서 생각해봅니다. 보답을 바라면 왜 불행한 것인지.
첫째로 보답을 바라고 사랑을 하면
그의 보답에 나와 나의 사랑이 좌우되기에 불행합니다.
보답을 받으면 나와 나의 사랑이 만족하고
못 받으면 나와 나의 사랑이 불만케 될 텐데,
다른 게 불행이 아니라 이것이 불행입니다.
보답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누구에게 내가 매이고
내가 누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니 말입니다.
둘째로 보답을 바라고 사랑을 하면
그것은 거래지 사랑이 아니기에 불행합니다.
사랑을 하는 목적이 그 사람이 아니라 보답이기에
사랑을 하지만 사실은 사랑이 아니고 거래일뿐입니다.
애정 결핍자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받기 위해서 사랑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의 충만은 그 자체로 오는 것이지
사랑의 보답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는 짝사랑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교탁에 꽃을 갖다 놓는 것, 선생님은 모릅니다.
내가 갖다 놓은 걸 선생님이 알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완전히 내가 좋아서 합니다.
그런데 내 가슴은 콩당콩당 뛰며 충만합니다.
충만한 사랑만이 보답을 바라지 않고 주고
보답을 바라는 사랑은 결핍을 채우려는 거짓 사랑입니다.
셋째로 보답을 바라고 사랑을 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얻지 못하기에 불행합니다.
사람에게 보답을 바라는 것은 하느님 사랑을 원치 않는 표시,
하느님 사랑은 없어도 인간의 보답만 있으면 된다는 표시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의 사랑은 원치도 않고, 원하는 보답은 오지 않으니
결국 아무런 보답도 얻지 못해 불행합니다.
반대로 인간의 보답을 바라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구하면 행복합니다.
인간의 보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어찌 보면
교만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한 자존심의 소유자입니다.
자기와 별 다를 것 없고 만족이 되지 못하는 인간의 사랑을 구걸하고,
그 사랑에 나의 행불행이 좌우되지 않겠다는 콧대 높은 사람입니다.
명품이 아니면 아예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아니면 다른 사랑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보답을 바라지 않음이
교만하고 이런 콧대 높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요.
콧대가 높아서가 아니라
만족을 줄 수 없는 덧없는 사랑에 기대지 않고
완전한 만족을 주는 사랑을 더 갈망하기 때문이어야겠지요.
이왕 보답을 바란다면 오직 하느님 사랑만 받겠습니다. 이겁니다.
은총을 깨닫는 만큼 ,사람들에게 기대치 않고
제 자신 모든것 감사드리며 사랑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