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이 있다는 말씀,
자기가 대신 채우겠다는 말씀은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정말 부족함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고난에 부족함이 있어서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기라도 한다는 뜻입니까?
우리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고 바오로 사도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남은 고난은 어떤 것입니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그리스도에게는 남은 것이 없지만
바오로 사도에게 남은 고난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종종 하는 얘기지만 누가 아플 때 저도 아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파하지도, 대신 아파하지도 않으면서 생각은 그리하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아파하거나 대신 아프지 않은 것이 미안합니다.
사랑이 그리 크지 않은 저도 이런 부채감이나 미안함이 있는데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바오로 사도는
교회의 아픔, 공동체의 아픔, 이웃의 아픔에 대한 부채감이 컸을 것이고,
이 고난에 자기가 어떤 식으로든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뿐이라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이 채우려는 것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그리스도를 생각지 않고 인간적인 사랑만 하는 사람도
저처럼 이 정도의 사랑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바오로 사도의 생각 안에서 그리스도는 한 번의 수난으로 당신의 수난은
끝났다고, 당신이 하실 것은 이제 더 이상 없다고 하실 분이 아니지요.
어머니의 사랑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지요.
어머니의 사랑은 출산할 때 한 번 겪는 고통으로 그치지 않고,
눈을 감는다고 그치지 않으며 자녀들이 고통을 겪는 한 고통은 계속되지요.
어머니에게 자식으로 인한 고통이 멈추면 사랑도 멈추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수난은 인간 고통의 역사가 끝나지 않는 한
끝나지 않고 그래서 계속될 것인데 그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수난이
바오로가 채워야 할 남은 고난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계속되는 수난과
그리스도의 계속되는 수난이 바로
교회의 일꾼인 바오로 사도의 남은 수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남겨진 그리스도의 수난,그래서
내가 채워야 할 그리스도의 남은 수난은 무엇인지 무겁게 성찰하며
교회의 고통과 이웃의 고통을 돌아보게 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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