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머무는 기쁨
“내가 아버지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0-12)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고 느낄 때
아버지께서 나를 돌보아 주신다고 느낄 때
그분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느낄 때
나를 도구 삼아 선을 행하실 때 …
사랑은 사랑이 아닌 그 어떤 방법으로도 알 수 없다.
사랑은 사랑에 의해서만 알게 된다.
사랑은 믿음과 희망에 활력을 주어
믿음을 구체적인 삶으로 옮기도록 돕는다.
사랑은 서로 주고받는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응답하는 사랑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아는 것이고,
하느님을 아는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용서받은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사랑은 죽음을 낳는 이기심과 고독에서 벗어나게 할 뿐만 아니라
허다한 두려움을 몰아낸다.
너를 자유롭게 하는 사랑은 나를 자유롭게 만들고
자유로울 때만 하느님의 선이 관계 안에서 흘러가도록 자신을 내어놓기 때문이며
자유로운 사랑에서 나오는 기쁨은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요한 1서 4,10)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사랑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누구도 제외하시지 않았다.
남김없이 주는 사랑은 내어주는 몸이며 쏟는 피로 드러났다.
그것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듯이”가 말하는 내용이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그러한 방법으로 관계적 사랑을 배우는 사람이며
관계적 사랑은 언제나 응답으로 하는 사랑이기에
보상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보상을 바라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거저 받았기에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기쁘다.
기쁨은 내가 살아있고 존재하고 있음에 대한 기쁨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대상을 사랑하는 데서 나오는 기쁨이며
그분께서 나와 하나 되시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나 또한 그분과 하나 되는 체험에 대한 정서적 반응이다.
그러므로 기쁨은 사랑의 열매이며 부산물이다.
사랑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의미도 없고 알지 못하던 내가 의미를 되찾고 알게 되는 깨달음,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람을 사랑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하시고
우리는 저마다 아버지의 손에 맡겨진 도구로써 자신의 길을 간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기쁨을 우리에게 나누어
우리의 기쁨이 넘치도록 하시려고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기를 원하시니
나도 그분의 사랑 안에서,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나라와 아버지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오늘도 ‘나’로 가득 찬 ‘나’를 나에게서 떠나보내고
‘너’에게 자유를 주고 허용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내 몫의 고난을 받아들이려고
내 몫의 자유를 그분께 내어놓는다.
고난이 우리를 하느님과 타자들로부터 분열된 것을 극복하도록 돕기 때문이며,
이것이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이고
고난 없는 사랑은 없기 때문이다.
주님!
코로나19와 싸우는 이들의 수고와 땀의 찬미를 받으소서
고난을 배우는 이들의 여정을 돌보아 주시고
고난을 두려워하는 이들의 믿음을 새롭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