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을 보는 눈
관상은 현실과 진실을 바탕으로
내면과 밖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하는 영의 활동이다.
이러한 영의 활동은 가난한 마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말씀의 통치에 내어드리고, 말씀을 내면에 간직하고 되새기는 가운데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돌보심을 인지하는 앎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한다.
내면에 감춰놓은 것들을 밖으로 들통나게 하여
상처받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일은
연결된 사람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마음속에 교묘하게 숨어있는 어둠의 세력들,
이겨야 한다는 욕구와 성공해야 한다는 욕구,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욕구의 뒤편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를 잡고 있다.
무시 받고 소외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혼자 있게 된다는 두려움,
나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두려움,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피곤한 상태에서 스트레스와 상처와 불만이 솟아오를 때
내 안에서 미움의 세력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잠자던 지난날의 상처들이 밀려와
지금 나를 자극하는 상대를 향해 앙갚음하겠다는 충동이 솟아오름을 느낀다.
실제로 내가 이런 사람인지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온갖 쓰레기가 가득 차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 때부터 인간은 가리고 숨겨왔다.
보이고 싶지 않은 욕구와 잘 보여야 한다는 욕구가
내면에서 싸움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감추고 덮어버리는 데 익숙하다.
그보다는 내 안의 쓰레기들은 외면하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하여
위선적인 일이나 행위에 빠져버린다.
최악의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마음 안에 있다.
그러므로 중요하고 급박한 일은 우리 안의 이런 세력들을 자각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빛이요 거울이신
예수님의 인간적인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판단하지 마십시오. 단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닌 자신의 죄를 보십시오.”
어떤 왜곡도 없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라는 초대이다.
프란치스코는 “우리의 연약함”(2고린 12,5 참조)과
매일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다.
내 잘못이나 실패에 대하여 마음이 무겁고 아플 때
정직하지 못한 말이나 행동이 드러났을 때
자신의 좋은 뜻이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성격이나 기질을 몰라주어 마음이 쓰릴 때
좋은 뜻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릴 때
어떤 계획이 완전히 틀린 결과로 나타날 때
영육의 나약함, 지병의 상태를 몰라주어 모욕적이고 자존심이 상할 때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연약함에 이웃들이 보내는 비웃음의 눈길을 느낄 때
오락이나 취미를 단념해야 할 때
차별대우를 받을 때
일을 하는 데 느끼는 자신의 한계와 무능
병을 앓고 있어서 다른 이에게 의존해야 할 때
희생양으로 내몰릴 때, 등등 너무나 많은 십자가가 있다.
이것이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나에 대해 죽는 죽음이다.
관상은 내면의 어둠을 밖으로 드러냄으로써
알게 되는 앎이고 비로소 보게 되는 눈이다.
내면의 어둠을 드러내는 죽음 뒤에는 생명을 보는 눈이 열린다.
이 눈으로 보는 세상이 낙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