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소인배와 대인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소인배는 이익이 되면 잘해 주고 손해가 되면 내치는 사람인 데 비해
대인배는 자신의 이익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겠지요.
또 다른 차원에서 이 차이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작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품이 작은 데 비해
큰 사람은 그 품이 큰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럴 수 있음은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기에
웬만하면 내치지 않고도 그를 다룰 수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우리는 양 떼를 떠나 있는 양을, 곧
무리를 떠나 있는 양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게 됩니다.
그 양은 길 잃은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잃은 것일까요?
아니면 무리를 떠난 양일까, 우리가 잃어버린 양일까요?
만일 무리를 떠나 있는 양이 길 잃은 양이거나
무리를 떠난 양이라면 귀책 사유가 개인에게 있고,
잃은 양이거나 잃어버린 양이라면 공동체에 귀책 사유가 있겠지요.
그런데 만일 우리의 공동체가 큰 공동체이고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라면
그 양이 설사 제 발로 뛰쳐나갔거나 평소 말썽꾸러기였어도
그 양을 공동체가 잘못해서 잃은 양이라고 할 것이고,
그래서 그 양을 돌아오게 하려고 애를 쓸 것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문제가 많은 양이라도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듯
'내 양'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떠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고,
떠났을지라도 다시 돌아오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떠나고 무리/공동체를 떠난 양은 내 양입니다.
그러나 내 양이 아니라면 나와 무리를 떠나갈 때 붙잡지 않을 것이고,
나를 힘들게 할 때는 붙잡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쫓을 겁니다.
그러므로 더 근본적인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겠습니다.
말썽을 피우고 자꾸 공동체 밖으로 겉돌더라도
그래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말썽꾸러기를 내 양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죄인으로 만들고 용서하려는 것보다
죄인이 아닌 나의 형제로 여기는 것이 더 중요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오늘 비유에서 또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한 마리 양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쉽게 포기하는 목자는
다른 아흔아홉 마리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쉽게 포기할 것입니다.
백 마리는 한 마리, 한 마리가 모여서 백 마리가 된 것인데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목자는 다른 아흔아홉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한 마리, 한 마리를 차례로 잃어 버리게 될 것이고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공동체는 잃는 공동체입니까, 찾는 공동체입니까?
한 마리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입니까,
한 마리쯤은 잃고도 찾지 않고 내팽개치는 공동체입니까?
이것을 깊이 성찰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그는 죄인이 아니라 형제다!)
http://www.ofmkorea.org/284155
18년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주님과 다른 모든 것은 없다.)
http://www.ofmkorea.org/164322
16년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인간은 인간을 미워할 정도로 사랑한다.)
http://www.ofmkorea.org/95020
15년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살든지 죽든지)
http://www.ofmkorea.org/83992
13년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잃어버린 양인가, 길 잃은 양인가?)
http://www.ofmkorea.org/57524
12년 연중 저31주간 목요일
(<치코> 다시 길을 잃다)
http://www.ofmkorea.org/43571
11년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자기 양을 잃을 정도의 사랑)
http://www.ofmkorea.org/5353
10년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가족과 식구)
http://www.ofmkorea.org/4544
08년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가치전도)
http://www.ofmkorea.org/1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