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께서는 조심과 두려움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어제까지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게 "너희는 불행하다."고 하시고,
오늘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가르침이랄지 지침을 주시는 겁니다.
우선 바리사이를 조심하라고 하시는데
그들의 위선을 닮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여기서 주님은 위선을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누룩이란 어디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부풀리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불행하게 만드는 이 위선이라는 누룩을 우리는 왜 허용할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정말로 좋은 명품 가방을 갖고 싶지만
돈이 없어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짝퉁 가방이라도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짝퉁을 가지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나만 만족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나만 만족하면 되는 거라면 짝퉁을 가져도 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라는 것이 하나의 문제이고,
짝퉁으로 만족하기에 진짜 좋은 명품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른 하나의 문제입니다.
위선도 정확히 똑같습니다.
위선이란 거짓 선 또는 가짜 선인데
거짓 선을 가지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 하고,
거짓 선으로 만족하여 프란치스코가 얘기하는 그 지상至上선, 모든 선,
완전한 선, 충만한 선이신 하느님을 소유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되지요.
그러므로 이 위선이 우리 안으로 누룩처럼 들어오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선으로 다가오지만 실은 우리를 불행케 하기 때문에 악인
위선은 조심 정도만 하면 되는데, 조심을 넘어 두려워해야 할 것이 있고,
반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도 있음을 주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들이 우리가 싫어하는 것,
곧 악이기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것, 곧 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가 싫어하는 것,
곧 악이나 십자가가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
왜냐면 하느님은 앞서 봤듯이 참으로 좋은 분이시고,
그분 없으면 나라는 존재는 존재할 수도 없기에
하느님이 나를 떠나가 안 계시는 것을 두려워해야 하겠지요.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반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지요.
죽음과 고통이고, 이런 것들을 내게 주는 사람들인데,
주님께서는 이런 것들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정작 두려워해야 할 하느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왜냐면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과 행복도 주시고
영원한 죽음과 고통에 떨어지게도 하시는 분이시지만
이 세상에서의 죽음과 고통은 이 세상 사는 동안이고 짧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것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뭡니까?
그것은 현재의 두려움과 미래의 두려움,
가까운 두려움과 먼 두려움의 차이겠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발밑도 봐야겠지만
발밑의 땅이 꺼질까봐 멀리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는 지혜)
http://www.ofmkorea.org/158465
17년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우리는 제대로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는데)
http://www.ofmkorea.org/112490
16년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우리가 주님의 벗이라면.)
http://www.ofmkorea.org/94543
15년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믿는 것이 다가 아니다.)
http://www.ofmkorea.org/83489
14년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유롭기 위해)
http://www.ofmkorea.org/65946
12년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조심은 하되 두려워함 없이)
http://www.ofmkorea.org/42498
10년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너무도 귀한 당신)
http://www.ofmkorea.org/4476
08년 연중 제28주간 금요일
(구원의 복음을 듣는 성령의 때)
http://www.ofmkorea.org/17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