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하고 오늘 독서와 복음을 배치한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 독서와 복음은 분위가 정반대입니다.
오늘의 독서 에페소서는 은총, 평화, 복을 얘기하는 데 비해
오늘 복음은 어제에 이어 "너희는 불행하여라!"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대조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가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그러니까 "지식의 열쇠를 치워버림"으로써 불행한 것임에 반해
에페소서의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주시는" 은총과 복을 내려주셨기 때문에 행복한 것입니다.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찬다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복을 걷어차는 사람이 불행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불행한 사람은 복이 없어서 불행하거나
복을 누가 주지 않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복을 걷어차서 불행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에페소서와 연결시키면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계속해서
온갖 은총과 복을 주시는 분인데 그 복을 개떡같이 여겨 차버리거나
오기로 차버리거나 아무튼 차버려서 복이 날아가서 불행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로 대표되는
불행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지식을 알려주셨는데 그 예언자들을 죽여버린 조상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신비에 대한 지식의 열쇠를 차버리지요.
복음 다른 곳에서 집짓는 자들이 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듯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려버림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복을 걷어자버린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주님을 은총으로 만나기 전에는 이들과 마찬가지였지요.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제자들을 박해한 사람이었으니
주님께서 은총을 베풀지 않았으면 오늘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려주신 하느님 은총과 복을 가볍게 여겼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려주신 하느님 은총과 복은
우리가 그렇게 가볍게 여길 것들이 아니고
우리는 이것들을 가볍게 여길 만큼 대단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간혹 자기 비하감과 열등감에 빠질 때도 있지만
정반대로 터무니없게도 자기를 대단한 사람인 양 착각하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다 교만에서 비롯된 정확하지 않은 자기 인식인데
우리는 진정 자기 주제와 분수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이 자기 주제 파악과 분수를 앎을 일반적으로 겸손이라고 하지만
우리 신앙인은 이 겸손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겸손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고,
크신 하느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깨지기 쉬운 질그릇이지만 은총으로 충만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충만이나 행복은 어디까지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경우입니다.
받지 않으면, 더 정확히 얘기하여, 받아서 들이지 않으면 해당 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지지리도 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내게만 복을 주지 않아서가 아니고
복 주시는 분인 하느님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그 복을 찾거나
주시는 복을 무시하고 걷어차서 그런 것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천국의 자물쇠는 열기 쉽다)
http://www.ofmkorea.org/276081
17년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예언자의 불행진단을 어찌 탓한단 말인가?)
http://www.ofmkorea.org/112468
16년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주님은 우리에게 모든 덤터기를?)
http://www.ofmkorea.org/94525
15년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죄에 머물지 말고 은총에 머물자.)
http://www.ofmkorea.org/83461
14년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참 지식과 사이비 지식)
http://www.ofmkorea.org/65934
10년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열쇠)
http://www.ofmkorea.org/4474
08년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그리스도 안에서)
http://www.ofmkorea.org/17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