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리는 축일입니다.
다른 성인들은 모두 죽은 날을 기념하여 축일을 지내지요.
탄생 축일을 지내는 것은 주님 외에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왜 그런 것이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반 성인들은 죽을 때까지 거룩하게 살았음을 기리는 것임에 비해
성모님과 세례자 요한은 어떻게 일생을 살았느냐 이전에 탄생 그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탄생서부터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었던 분들이고,
그래서 성모님의 무염시태나 성모 성탄이 성모님의 거룩하심을
기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의 놀라우신 구원 계획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기념하는 것이듯 세례자의 탄생도 마찬가지지요.
그렇습니다.
두 분 다 하느님 구원 계획과 섭리 안에서 미리 탄생이 정해진 분들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성모님이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위해서는 여인의 몸을 빌려야 하니
어머니 역할을 하실 분이 꼭 있어야 했고, 그래서 미리 정해져야만 했지만
세례자 요한은 꼭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이 주님 오실 길을 미리 닦았다고 하는데
세례자 요한이 없으면 주님께서 오실 수 없다는 얘긴가요?
그렇지 않지요.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이 꼭 필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을 맞갖게 맞이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해서,
곧 우리를 위해서이고 그래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은총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님 구원 사업의 협력자가 되도록
탄생에서부터 다시 말해서 천지 창조 이전부터 미리 정해진 분이십니다.
이것을 우리말로는 운명이 지어졌다고 하고 영어로는 ‘destined’라고 하지요.
이런 운명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님 구원사업의 협력자로 정해졌다면 영광스러우실까요? 거부감이 들까요?
저는 어려서부터 신부가 되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고 은퇴 신부님 복사하고 매일 미사 하면서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 것이고 그래서 소신학교 때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지요.
그런데 몇 년 지나서부터 손해 봤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지요.
좀 더 놀다가 들어왔어도 되는데 괜히 일찍 들어왔다는 생각에서부터
이렇게 내 운명이 정해졌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까지 들기 시작하면서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까지 들어 수도원을 나왔다가
결국 제가 이 수도생활을 다시 선택하여 들어왔고 지금까지 이르렀지요.
이런 저에 비해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는데,
정리를 하자면 주님의 선구자로서 구원사업의 협력자가 된 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요 은총이지만 그가 자신의 운명과 소명에
거역하지 않고 충실히 협력한 것은 그의 사랑이요 순종이요 사랑이며,
이것이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 제일 위대하다 한 그의 위대함입니다.
우리는 종종 위대偉大하다는 말에 빗대어 위대胃大하다고 곧 위가 크다고
농담하곤 하는데 위가 큰 사람이 많은 음식을 담을 수 있듯이 진정 위대한
사람이 하느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과 사랑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겠지요.
그리고 진정 위대한 사람이라야 더 큰 분 앞에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도 할 수 있겠지요.
노자가 바다는 가장 낮기에 가장 크고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다고
하듯이 세례자 요한은 진정 자신을 낮추었지만 가장 큰 분을 담은 분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다는 백부장의 겸손도 있어야겠지만
주님의 큰 구원 계획에 세례자 요한처럼 협력하겠다는 위대한 겸손도
있어야 함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선구자에 대하여)
http://www.ofmkorea.org/231814
18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운명과 사명의 사람)
http://www.ofmkorea.org/127076
16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위인과 성인의 차이)
http://www.ofmkorea.org/90692
15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가리지 말고 가리키자!)
http://www.ofmkorea.org/79119
13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가리치는 사람인가, 가르치는 사람인가?)
http://www.ofmkorea.org/54549
12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운명인가, 사명인가?)
http://www.ofmkorea.org/32054
11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겸손의 유믜미성)
http://www.ofmkorea.org/5160
10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원심력과 구심력의 사랑 관계)
http://www.ofmkorea.org/4151
09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열등감)
http://www.ofmkorea.org/2707
08년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어린 양을 가리키는 손 가락)
http://www.ofmkorea.org/1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