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축일의 감사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 가운데 성령의 힘에 감싸여
탄생하시리라는 천사의 알림을 동정 마리아께서는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고
외아드님을 성령으로 잉태하시어 당신의 흠없는 태중에 모셔들이셨나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오늘 축일의 의미를 잘 담고있는 감사송인데
오늘은 이 노래 중에 "사람들을 위하여 사람들 가운데 탄생하시라는" 말씀이
더욱 두드러지게 저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데
제 생각에 하느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고 얼마나 큰 사랑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뭣을 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그저 기도나 말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만들어 갖다 준다거나
그에게 특별히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해주기도 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예를 들어 북한의 백성을 위해 큰 사업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를 위한다거나 위해서 뭣을 한다고 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일 경우가 많고,
실제로 그를 위한 것일지라도 그 사랑이 별거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까지 40년 넘게 수도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 가운데서
있으려는 시도는 참으로 많았지만 결국 저는 돌아올 수도원이 있었고,
그래서 결국 저의 사랑은 밖에 있으면서 나를 조금 내어줄뿐
사람들 가운데서 온전히 그들과 같아지는 사랑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 가운데 계시고자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진정 크고 진실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자기의 일부를 내어주는 게 아니라 전부를 내어주는 것이고,
사람들과 같아지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다른 신화의 얘기들과 비교하면 그 위대함이 잘 드러납니다.
다른 신화에서 이 세상에 내려온 신들은 천상계에서 죄를 짓고 쫓겨나서
세상의 지배자들이 된 존재들이니 사랑 때문에 우리에게 온 것이 아니지요.
이런 신들에 비해 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두 번째 독서의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라는 말씀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느님이신 분이 인간이 되시는
참으로 위대한 비허와 순종의 수락을 하신 겁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신 분이 또 있으니
바로 성모 마리아시고 이렇게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성모 마리아께서 주님보다 더 어렵고 위대한 수락을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인간이 하느님을 잉태할 거라는 말을 믿을 수 있고,
이런 천사의 말이 하느님의 뜻인지는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그 잉태를
자신이 해야 한다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가 수락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을지
그러니까 오늘 복음에 마리아가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는 인삿말을
듣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고 하는데
곰곰이 생각한 것이 몇분일지, 아니면 몇 달일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복음을 한숨에 읽기에 마리아가 말씀을 듣고 금방 수락한 것 같지만
말씀하신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서도 금방 수락키 힘들었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라는 소명이 너무도 엄청나 수락키 힘들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쩌면 마리아가 금방 수락하셨을 겁니다.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고 명령을 받잡기 어려워도 하느님 앞에서 인간적인
수많은 생각은 한칼에 끊어버리고 믿는 이에게 백지수표를 맡기듯 일단은
수락을 하고 그 다음에 고민을 하건 곰곰이 생각을 하건 하셨을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사랑과 능력의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적인 잔머리를
일거에 지워버리는 것임을 묵상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