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오늘 이 말씀들 안에서 볼 때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한 분,
총애를 받은 분,
주님께서 함께 계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을 들으면 기뻐날뛸 것 같은데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말을 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하느님의 은총과 총애를 받은 자 되고,
주님께서 함께 계신 자 되는 것이 어찌 두려워할 일인가요?
이 두려움을 생각할 때 저는 프란치스코의 다음 찬가가 떠오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께서 사제의 손 안에서 제대 위에 계실 때,
모든 사람은 두려움에 싸이고 온 세상은 떨며 하늘은 환호할지어다!
오, 탄복하올 높음이며 경이로운 공손함이여!
오, 극치의 겸손이여 오, 겸손의 극치여!
우주의 주인이시며 하느님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이토록
겸손하시어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찮은 빵의 형상 안에 당신을 숨기시다니!“
그러므로 마리아의 두려움이나 프란치스코의 두려움은
징벌에 대한 죄인의 두려움이 아니라
은총에 대한 겸손한 자의 두려웁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신앙인이고 덕인이라면
은총을 주지 않는다고 떼를 쓰지 않을 것이고,
은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합당치 않은 자신에게 은총이 주어지는 것이 두려울 것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제가 죄스럽고 두려운 것은
은총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 은총을 함부로 대하고 낭비하는 것입니다.
물 한 방울이 얼마나 소중한데 그 소중함을 모르고 낭비하는 것이 두렵고,
그 소중한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죄스러운 것입니다.
보물을 쓰레기로 만드는 그 교만함과 무도함.
참 가치를 몰라보는 존재의 가벼움과 천박함.
오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라는 무신경과 방자함.
우리에게 오신 아기를 고아처럼 방치하는 무정함.
이런 것들을 두려워하며 성찰하는 오늘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숙맥菽麥)
http://www.ofmkorea.org/177010
14년 12월 20일
(마리아처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려면)
http://www.ofmkorea.org/73019
13년 12월 20일
(은총을 받은 사람은 고통까지 사랑하는 사람)
http://www.ofmkorea.org/58678
12년 12월 20일
(성령의 여인)
http://www.ofmkorea.org/46338
11년 12월 20일
(발원지의 물은 언제나 쫄쫄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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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년 12월 20일
(수용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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