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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8주 토요일-그의 때가 하느님의 때,

by 당쇠 posted Aug 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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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예수님도 조급증이 있으셨나?

20여 년 전 저는 양성소임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몇 번을 말했는데도 아직도 그 모양이냐!”
“몇 번을 가르쳐줬는데 아직도 모르느냐!”
“몇 번을 지적해줬는데 아직도 고치지 않았냐!”

그날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는 형제들을 둘러보다
이런 마음이 가득하고 넘쳐서 어떤 한 형제에 대해
‘이렇게 해도 안 되니 포기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저에게 제 안의 주님이 말씀하시는 듯 했습니다.
“몇 번이나 말했는데?”
“몇 번의 얘기로 얘기한 대로 되기를 바랐냐?”
“한 번 얘기해서 되면 네가 왜 필요하겠니?”
이 말씀에 저는 그 형제가 문제가 아니라
사랑, 특히 기다림의 사랑이 부족한 제가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영어로 Education이라는 말과 Form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사람을
가르쳐
꼴을 갖추게 하고(사람이 되게 하고)
꼴값(사람 구실)을 하게 하는 일련의 활동을 일컫는 말들인데
Education이 우리말로는 교육,
그러니까 스승의 가르침에 더 비중을 두는 편이라면
Formation은 우리말로 양성, 형성,
그러니까 학생이 어떤 꼴을 갖추게 됨에 더 비중을 두는 편입니다.
스승이 지식을 몇 마디 가르쳐주고
학생이 그것을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려울 것이 없지만
학생이 교양을 갖추고 어떤 꼴을 갖추게 하는 것은,
더 나아가 꼴값까지 하게 하는 것은 힘들고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도 그렇고 스승도 그렇고
그것을 깨닫고 그렇게 형성되기까지 힘든 시간과 과정이 있었는데
그것도 사랑이긴 하지만 자신의 현재만 생각하고
빨리 형성되지 않는다고 안달을 하고 재촉을 하고
어떤 때는 자신도 못하는 것을 자식이나 제자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어떤 꼴을 갖추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때가 바로 하느님의 때입니다.
나의 때가 아니라 그 사람의 때가 하느님의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그 사람의 때도 하느님의 때도 아닌 나의 때를 고집합니다.

그러면 오늘 주님도 더딘 제자들과 말귀를 못 알아듣는 백성들에게
조급증을 느껴 성화를 하고 한탄을 하시는 것일까요?
주님도 기다리지 못하고 당신의 때에 집착하시는 것일까요?

주님은 요한복음의 대 사제의 기도에 볼 수 있듯이
제자들과 세상을 성부께 맡기십니다.
그러니 오늘의 말씀은 주님의 내적인 상태의 표출이 아니고
당신이 떠나시기 전 재촉의 가르침이고
당신이 떠나시고 난 다음을 생각하시는 안타까움의 표출입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것 다 하느님께 맡기지만
그 전에 당신이 떠나실 때를 생각하며 안타까워하시고
자식들에게 깨우치고 제대로 살아갈 것을 재촉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더 있어야 한다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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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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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뭉게구름 2009.08.08 14:10:11
    세번 설명을 해서 못 알아 들으면
    다섯 번을 설명 해 줘야 하고

    일곱번을 설명 해서도 못 알아 들으면
    열번을 설명 해줘야 사랑 인 것 입니다.

    알면서도 안 되는 것은
    사랑과 믿음의 부족 입니다.

    기다림은 사랑 입니다.
  • ?
    홈페이지 요셉 2009.08.08 14:10:11
    그렇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절박한 순간에 자식을 향한 부모의 깊은 사랑에서 토해내는 육성처럼.......

    철없는 자식에게 뒷일을 맡기도 떠나야 하는
    부모의 심정에서 나오는 애절함이요,
    적극적인 사랑의 표현이 아닐까요.

    사랑하는 사람은 알아들을 것입니다.
    상대가 하는 말의 뉘앙스를 말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말마디를 물고 늘어지는
    피곤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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