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의 진리
인생의 후반기 삶에는 다 이상 영웅이 될 필요가 없고
참다운 자신이 될 필요만 있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지배하려는 나의 독재성과 자아도취의 우상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
자신이 구축한 틀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그 틀을 버리는 죽음과
확실하다고 믿어 온 확실성에 죽는 일,
다시 말하면, 자신이 만든 울타리와 원칙을 부숴버릴 때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가지셨던 확신과 희망을 지닐 수 있다.
겸손하고 가난한 마음을 지니고 사람에 대한 존중과 자유를 주는 일을 하면서
지금을 마지막 상태로 살아가게 한다.
왜냐하면, 그 일이 참다운 자신이 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틀을 버릴 만큼 더 강렬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성프란치스코는 생의 말년에 형제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것이 없으니 다시 시작합시다.”
여기에는 일상에서의 자기 죽음이 담겨있다.
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것이라는 믿음을 볼 수 있다.
자신을 오른쪽에 있게 해 주는 그림자와 가면을 벗어버린 말이고
숨 막히게 하는 자기중심적인 껍질을 벗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가난은 목적이 아니라 연결을 위한 수단이다.
우리의 계산적이고 통제하려 드는 모든 정신을 통합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내적 가난의 열매들이고
관상적이고 신비적인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기초를 가난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추구했던 것들은 상승을 위한 얼굴과 기반을 갖기 위한 노력이라면
후반기 생애에 추구해야 할 것들은 하강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 가야 한다.
이 경계지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하강의 때를 아는 지혜는 위로부터 온다.
지금이 바로 시작의 때이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나약함과 죄, 수많은 넘어짐의 흔적들을 바라보고
그 흔적들 안에서 정화의 질서를 발견하게 되면
놓아주고, 내려놓고, 자유를 주는 법이 곧 내가 자유로워지는 법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닮으려는 강렬한 갈망과 연결이
참다운 자신이 되게 하는 기반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과정의 진리는 그렇게 과정의 충실성으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