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피정
물러남과 멈춤 그리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름은
피정하는 사람의 내적 활동이다.
일상에서 요구되는 것들과 정신을 산만하게 만드는 일들에서 벗어나
그냥 존재할 수 있고 자신을 성찰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어떻게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다.
멈추지 않고서는, 물러나지 않고서는,
얕은 나를 내려놓고 더욱 깊은 자기 속으로 들어갈 수 없으며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르지 않고서는
무엇이 내 삶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피정하는 시간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시간이 있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하는 것이다.
무엇에서 벗어나려 하는가?
어디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가?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피정하는 것은 엔진오일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엔진이 되기 위한 것이다.
진짜 자기에게 돌아가는 변화를 위한 시간이며,
하느님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하느님과 대면하기 위하여 내가 맞서고 있는 것, 씨름하고 있는 것과 만나야 한다.
고독과 침묵과 두려움을 회피하고 위장하는 나와 만나야 한다.
현실도피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은폐의 현장에 내려가야 하고
영적 위기를 돌파하려는 적극적이며 희망적인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
피정은 내적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이다.
위로부터 오는 에너지로 자신 안에 숨겨진 에너지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대결의 현실 세계에서 시험도 거치지 않고 안락한 피정을 하는 것은
영적인 가짜들만 만들어 낼 뿐이다.
예수님에 대해 생각만 하고 예수님에 관한 것들을 믿는 것으로는
새로운 일이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나를 새롭게 바꾸는 것은 예수께서 행동하셨던 것처럼 모험을 거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
나는 피정을 떠날 때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간다.
많은 피정을 해왔지만 회심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나를 발견하였다.
나를 회심하게 만든 것은 실제 상황이었다.
실제 상황에서 벌어지는 대결에 하느님의 선하심이 승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대면하고 싶지 않은 것과 맞섰다.
그것은 그리스도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다.
행동하는 실천을 대체할 이론은 없다.
안전지대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묵상할 것이 없다.
이 길은 죽음의 길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죽기로 작정하면 죽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매일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실제 상황은 죽기로 작정해야만 해결되는 일들이다.
피정을 통해 얻는 지혜는 고통을 지니고 그 고통을 변화시키며
고통을 주는 이를 살려내는 현장에서 성장한다.
현실에 짓밟히지 않으려면 그 현실과 싸워야 한다.
고난당하는 위치는 복음의 특권적 위치다.
거룩한 바보들만이 아는 그 길을 피정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