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쫓아내라
농경문화에서 남성들은 땅을 가꾸고, 물건을 만들고,
생활을 유지하고 개선하는 일을 향해 에너지를 써 왔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이 세상과 맺는 관계는
단순히 돈벌이로 전락한 사람일 뿐, 삶의 목표를 잃어버렸다.
돈을 벌지 못하면 결혼도 하기 어렵고 좋은 관계도 맺기 어렵게 되었다.
아직 맘껏 뛰놀고 또래들과 어울려 즐거움을 누릴 나이에
집을 떠나고 부모를 떠나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여러 학원에서 시간을 보낸다.
왜 그런가? 돈을 버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하여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며 이러한 수단은 정직할 수 없게 만들었다.
수단이 목적이 되면 양심의 가책도 없이 거짓말과 은폐와 조작을 배운다.
이로써 신뢰의 관계를 맺지 못하고 돈이 지배하는 관계만 남는다.
돈을 버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가 된 아이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
탐구하거나 발견하는 일, 문화와 예술과 창작의 세계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돈벌이는 무엇보다 자기 이미지, 개인적인 안전, 개인적인 권력, 사적인 만족만을 추구한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고
눈앞의 편안함에 병들며
눈앞의 쾌락에 중독되어 폭력과 사기로 죽이는 문화,
이것은 영성의 영역에서 특히 두려운 일이다.
돈으로는 영혼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성프란치스코는 돈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가난을 통해 가르치려 했던 것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풍요로움이었다.
오늘날 그러한 영적 풍요를 누리는 프란치스칸들이 얼마나 될까?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돈을 우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심각한 경고를 해왔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마태 6,24)
돈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돈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없다.
이중 충실성은 함정이라는 사실이다.
돈을 사랑하기 쉽다.
돈벌이에 사로잡히고, 돈에 모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너무나 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을 그 왕의 자리에서 쫓아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통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