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사람을 자유롭게 해주기 전에 먼저 사람을 힘들게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비극을 안겨주는 전문가들,
그로 인하여 걸림돌에 걸려 비틀거리다가
그 일이 없었으면 결코 보지 못했을 것들을 보게 될 때가 많다.
넘어지고 추락하는 사이,
우리의 안내자이신 예수님에게 내어 맡기게 되고
예수님은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다주신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들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몰랐다.
사람이기에 겪는 필요한 고통을 거절하면 더 큰 고통에 직면하는 사실을 자주 본다.
통제할 수도, 설명할 수도, 바꿀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이면
어디에도 출구가 없는 곳에 갇혀버린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한계에 부닥치고 무너져 내리는 그러한 경험이 없이는
하느님을 찾지도 않는다.
십자가는 먼저 우리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우리의 문제를 풀어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이 우리의 진짜 문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거울처럼 언제나 우리의 범죄를 드러내신다.
성프란치스코는 그의 유언에서 나환자를 보는 것이 역겨웠다고 고백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가시 돋친 채찍이었다
(가시 돋친 채찍에 발길질하면 너만 다칠 뿐이다. 사도행전 26,14)
성프란치스코는 그것을 발로 차는 대신 나환자와 입을 맞추었다.
참으로 힘든 대가였지만 그것이 아니었으면 진짜 자기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나환자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기 과신에 피해를 보면서 생을 마감한다.
소위 성공신화라는 틀 속에서 자수성가를 이뤘다고 하는 이들은
실패와 몰락을 거부하는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깨달음도 없고 동정심도 없고 자비심도 없다.
막상 정상에 오르고 보면
오래도록 자기를 만족시켜줄 무엇이 거기에 없음을 알고 허망함을 느낀다.
결국, 총체적 파국에 직면하여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 걸림돌이 많아 걸려 넘어지더라도
그 일을 통해 하느님과 나를 조금 더 잘 알게 되고,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주님께서 나와 함께 일하고 계심을 알기 때문이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