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에 피는 꽃
정상이 아닌 비정상
설명이 안 되는 예외들을 존중할 때 그것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를 존중하라”(마태 25,10)
예수께서는 변두리에 몰려있는 사람들,
유다 지도층들이 하느님께서 버렸다고 했던 사람들과 함께하셨다.
창녀든 술꾼이든, 이방인이든, 문둥이든, 세리든 상관없었다.
소외된 계층과 음식을 나누고 죄인으로 판명 난 세리들과 자주 어울렸다.
그것은 당시 엄정한 질서와 정결을 중요시하던 교회의 지도자들과
충직한 신도들을 격분케 하였다.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비정상들이 관계를 망친다.
“우리는 모두 죄인들이다.”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은 잘못하고 산다.
잘못하는 것이 사람이다. 라는 전제를 두고 관계를 만들어 가야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공간이 생기고 평화를 유지할 수가 있다.
겸손해야만 하는 경우, 겸손을 거절하는 교만이
사람들을 버리고 관계를 단절시킨다.
나는 공범자다. 나의 자만과 착각이 한몫했다.
비교평가를 통해 스스로 우월하다는 의식 속에는 사람에 대한 존중은 없고
존중이 없는 곳에는 실존적 공허만 남아 생명의 에너지를 고갈시킨다.
“사람에게 자유를 주는 법”(야고보 2,12) 이 사라진 곳에는
쓰고 버려진 이들, 무너진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자비가 필요하다.
인간의 실패와 무질서에 적응하려는 곳에 하느님의 자비가 있다.
하느님의 통치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예외와 무질서 안에서도
정상적인 관계를 추구하도록 차별 없이 사랑하신다.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경험한 이들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용서받은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
쓰레기장에 피는 꽃
거기서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