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제자들의 입에서 안다는 말, 믿는다는 말이 비로소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하고 물음 형식으로 대구하시는데
주님은 믿는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임을 제자들이 아무리 믿는다 해도
당신을 놔두고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이것이 주님의 진짜 믿음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믿음을 아버지께 두지 제자들에게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믿는다고 해서 그 때문에 기분 좋아지고
배신을 하고 도망친다고 해서 그 때문에 분노하지도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배신과 도망을 으레 그러려니 하십니다.
배신과 도피, 그것이 사실 인간의 본모습입니다.
그 이상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믿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믿거나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기대에 찬 요구를 합니다.
그 결과 우리 인간은 실망하고, 분노하고, 흥분합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은
마치 배 밑 부분의 무거운 돌덩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풍랑이 거세게 일어도 밑에 무거운 것이 있으면
배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화로울 수 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다는 믿음으로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고 평화로우셨듯이
우리도 어지럽게 흔들리는 세상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주님께 믿음을 둠으로 주님 안에서 평화롭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하고 물음 형식으로 대구하시는데
주님은 믿는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임을 제자들이 아무리 믿는다 해도
당신을 놔두고 모두 뿔뿔이 흩어질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이것이 주님의 진짜 믿음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믿음을 아버지께 두지 제자들에게 두지 않으십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이 믿는다고 해서 그 때문에 기분 좋아지고
배신을 하고 도망친다고 해서 그 때문에 분노하지도 않으십니다.
제자들의 배신과 도망을 으레 그러려니 하십니다.
배신과 도피, 그것이 사실 인간의 본모습입니다.
그 이상일 것이라고 믿는다면 믿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그 이상일 것이라고 믿거나
그 이상이어야 한다고 기대에 찬 요구를 합니다.
그 결과 우리 인간은 실망하고, 분노하고, 흥분합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은
마치 배 밑 부분의 무거운 돌덩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풍랑이 거세게 일어도 밑에 무거운 것이 있으면
배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평화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화로울 수 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다는 믿음으로
주님께서 세상을 이기고 평화로우셨듯이
우리도 어지럽게 흔들리는 세상사에 마음을 두지 않고
주님께 믿음을 둠으로 주님 안에서 평화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