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렌시오 축일을 맞이하여 교회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복음을 들려줍니다.
이로써 라우렌시오 순교자가 한 알의 밀알이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인데
로마 교회가 커지는 데 있어서 그의 순교가 바로 밀알 하나였다는 얘기지요.
지난 수요일 청년 행진 때 저희는 김대건 로를 걸었고, 그때 저는
김대건 신부님이 배교하고 오래 사목을 한 것보다 1년밖에 사제로
살지 못하고 순교한 것이 한국교회를 위해 더 유익했다는 얘기를 했는데
라우렌시오의 순교가 로마 교회의 밀알 하나였던 것처럼
김대건 신부님의 순교가 한국 교회의 밀알 하나였다는 얘기를 한 거지요.
그런데 교회의 전례는 독서에서 또 씨 얘기를 합니다.
씨를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둘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씨는 순교가 아니고 선행입니다.
이로써 라우렌시오 성인은 순교자일 뿐 아니라
선행실천자라는 얘기를 우리의 전례는 하는 거지요.
실제로 부제로서 교회의 재산 관리자였던 그는 황제가 교회의 보물을
갖다 바치라고 하자 그 재산을 전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는
가난한 사람들을 데리고 가 이들이 교회의 보물이라고 얘기하여
황제의 분노를 샀고 그래서 가장 참혹하게 화형을 당했지요.
그래서 오늘 본기도는 라우렌시오 성인이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며
신자들을 충실히 섬겼다.”고 노래합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함과 신자들을 충실히 섬김이
라우렌시오 성인 안에서는 병행이 되었다는 얘기인데
저는 순서적이고 인과론적으로 이렇게 얘기하고도 싶습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여 이웃을 충실히 섬길 수 있었다고.
이것을 뒤집어 얘기하면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충실히 섬길 수 없다는 말이 되고,
인간적인 사랑만으로는 이웃 사랑의 한계가 있다는 말이 됩니다.
연인간의 뜨거운 사랑은 길어봐야 1년 반 지속된다는 연구가 나왔듯이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않는 인간의 사랑은 가능하지도 지속되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는 거라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내 사랑을 하느님께 드리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받는 거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해를 사랑하면
햇빛 가운데로 나아가 햇빛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지금 행진 때 햇빛을 그대로 받아서 얼굴이 새까맣게 탔는데
제가 만약 햇빛을 싫어해서 햇빛 가운데로 나아가지 않았으면
얼굴은 타지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햇빛의 비타민 D를 받을 수 없었겠지요.
또 해보다 달을 사랑하여 달빛 가운데로 나아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모든 은총을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모든 면에서 모든 것을 넉넉히 가져
온갖 선행을 넘치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는 오늘 독서처럼
하느님만이 해처럼 선행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랑을 충분히 주실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끼는 사람에게는 아낌이 없다.)
http://www.ofmkorea.org/135034
17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부끄러울 수밖에 없는 오늘)
http://www.ofmkorea.org/109399
16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뿌릴 씨 없어도 많이 뿌리라시는 하느님)
http://www.ofmkorea.org/92465
15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가난한 사람이 나의 보물이 될 때까지)
http://www.ofmkorea.org/81111
11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아끼는 사람을 위해 아낌없이)
http://www.ofmkorea.org/5246
10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무엇을 하건 죽자 사자!)
http://www.ofmkorea.org/4282
09년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독기가 아닌 사랑으로)
http://www.ofmkorea.org/2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