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어리석은 사람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는 흔히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왜 이들이 어리석은가 하면 모르는 것을 모르고
아는 것만 가지고 자기는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안다고 할 때 정확하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고 하지 않고
아는 것 하나를 가지고 안다고 하고 심지어는 다 안다고 하는 거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 것입니까?
그런 사람은 아는 것이 그 많은 것 중에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하나 외에는 다 모르는 사람이고 하나가 다인 사람이지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는데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알라고 하는 것이고,
자신을 모른다는 것도 자기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 알지 못하거나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알라고 하는 것이며,
모르는 것이 많이 있고 잘못 알고 있는 것도 많이 있음을 알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겸손한 사람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것을 아는데 비해
교만한 사람은 그것을 모르기에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고,
모르는 것은 없다고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어떤 현상을 일으킵니까?
모르는 것이 없다는 것이 자기가 모르는 것은 없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발전을 합니다.
만일 내가 하느님이 존재하는지 어떤 분이신지 모른다면
나는 하느님 존재하는지 어떤 분인지 모른다고 해야 하는데
내가 모르니 그런 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골에서 땅만 파서 먹고 사는 사람이 서울에 어마어마하게
큰 빌딩이 있고 그 안에서 몇 만 명이 기거하며 일한다는 것을 모르는데
어떻게 그런 큰 집이 있을 수 있냐며 그런 집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모르면 그것은 내가 모르는 것이지 어찌 없는 것이 되어버립니까?
모르는 것이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고
슬기롭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스도교는 계시 종교입니다.
인간의 지식으로 다 알 수 없는 것을 하느님의 계시로 알게 된다는 거지요.
인간의 지식으로 다 알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신비,
곧 신만이 알고 우리는 모르는 신적인 비밀이라고 하는데
이 비밀을 하느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와 슬기롭다는 자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와 같은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에게 드러내 보이신다고
오늘 주님께서는 말씀하시며 우리만은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하십니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어리석은 자가 내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시큰둥 늙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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