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가 여러 제자 중에서 뽑혀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 선포의 소명을 받고 파견되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의 주제를 부르심과 파견
또는 부르심과 소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예언자의 소명처럼 하나로 묶어서 얘기할 수도 있는데
저는 오늘 따로 떼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예언자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인데
이때 부르심이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을 가지고 파견되기 위해
부르심 받은 것이고 그래서 부르심 자체보다는 소명, 파견이 더 강조되지요.
사실 제가 이 삶에로 부르심을 받은 지 47년이 되는데
저는 거의 대부분을 하느님께서 세상에로 파견하시기 위해 부르셨다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고 그래서 지금까지 늘
내가 가야 할 세상을 봤고 내가 수행해야 할 소명을 봤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의 부르심은 우선 하느님께로 부르신 거라는,
어떻게 보면 이기적인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소명과 파견을 아주 나쁘게 생각하면 옛날에 소로 농사를 질 때
힘이 다할 때까지 농사를 짓게 하다가 늙어 일 못하게 되면 잡아먹는데,
마치 그것처럼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저를 일꾼으로 부려먹고서는 나이 먹어 늙으면
용도 폐기하는 것으로 저의 소명이 끝날 수 있는데도 그런 것이
결코 아니고 하느님께서는 1 차적으로 나를 사랑으로 부르신 것이며
당신과 함께 있으라고 부르신 것이라는 생각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의 1 차적인 부르심은 당신께로의 부르심입니다.
소명과 파견은 그 다음 그러니까 2 차적인 겁니다.
하느님은 저를 일 부려먹기 위해서 부르신 하느님이 아니고
당신과 함께 있자고 부르신 하느님이시며 그래서 이제는
어떤 일을 하는 제가 아니라 사랑 안에 있는 저이고 싶은 것이고
일꾼이 아니라 사랑꾼이고 싶은 겁니다.
이 생각이 틀린 생각이 아니고 이 바람도 잘못된 바람이 아니지만
그렇지만 이기주의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찜찜하기도 한 것은
아직도 수행해야 할 소명이 남았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하느님 사랑 안에 안주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직도 젊은데 이런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요즘 들어 언뜻언뜻 이일저일 제가 많이 하지만 다 지나가는 것이고
지금 하고 있는 협동조합도 대단한 것인 양 추진하고 있지만
다 지나가는 것이고 다 지나가고 나면 나는
하느님께로 돌아갈 거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돌아갈 하느님이 안 계시다면 저는 용도 폐기된 고물처럼 될 거라고
생각되어 앞으로의 저의 삶을 못 견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1 차적으로 저를 하느님 당신께 부르셨고
사랑으로 부르셨고 사랑에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부르심이 이기적이지 않기 위해서 또한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소명을 받아 파견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그런 다음 주님께 돌아가 당신께서 주신 소명,
잘 했는지는 모르지만 열심히는 수행하고 돌아왔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가까이 부르시는 주님)
http://www.ofmkorea.org/128227
17년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파견의 단계들)
http://www.ofmkorea.org/107042
16년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나는 어떤 사람인가?)
http://www.ofmkorea.org/91026
15년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우리는 희망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희망 공동체)
http://www.ofmkorea.org/79626
11년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사도로 부름 받은 뜻은?)
http://www.ofmkorea.org/5184
10년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하느님께서 일을 맡기시면)
http://www.ofmkorea.org/4196
09년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오라시고 가라시는 주님)
http://www.ofmkorea.org/2780
08년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부르시고 파견하시는 주님)
http://www.ofmkorea.org/1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