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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by 김명겸요한 posted Jun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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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무엇인가를 청한다는 것은

 그것이 지금 나에게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이 없기에 불편하고,

 그래서 그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청할 때,

 그것이 나에게 없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사실,

 나에게 그것이 없다는 사실이 창피해서

 쉽게 입을 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 바탕에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를 구분해서,

 가진 사람은 훌륭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즉 가지고 못 가지고에 따라서

 사람이 차별 대우를 받는 모습이

 종종 나타납니다.


 그러나보니 편하게 청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청하지 못해도

 없는 것은 여전히 불편하다보니,

 스스로 노력해서 그것을 구하려 하거나,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도 합니다.

 노력이 좋은 모습이기는 하지만,

 도움을 거부하는 노력은

 때로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둘 다 싫다보니,

 다른 사람에게 청하기는 하는데,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맡겨 둔 것을 받아가는 사람처럼

 청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 않기에,

 한계를 지닌 인간이기에,

 무엇인가는 나에게 없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마음 편하게

 드러내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청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이 청하다보면,

 숨겨 왔던 내 부족한 모습들이

 그래도 조금은 더 드러나게 됩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볼 수 있을 때,

 좀 더 구체적으로 청할 수 있고,

 얻으려고 하는 노력도

 좀 더 구체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었을 때의 기쁨도

 더 클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는 정말 화해와 일치를 원하고 있나요?

 화해와 일치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가요?

 하느님께 청하기에 앞서

 우리의 현실을 먼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단순히 화해해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화해하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 좋지 않기에

 일치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보다는 일치가 더 좋기에

 화해하려고 할 때,

 우리가 서로를

 서로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동반자로

 생각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일치를 청할 수 있고,

 그렇게 진실된 화해,

 진실된 용서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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