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제 우리가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당연히 속된 기준이 뭐고,
이제부터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도 뭔 뜻인지 질문케 됩니다.
이것이 뭔지는 성서학적으로나 성서 신학적으로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기에
저는 그것을 얘기하지 않고 제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나름대로 하고자 합니다.
언젠가 어떤 분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위한다’는 생각 속에는 나를 희생한다, 나를 덜어내어 상대에게
더해준다는 베풂의 의식이 깔려있다. 이 베푼다는 의식 속에서 반대급부의
바람이 씨앗처럼 잉태된다. 만약에 ‘위함’을 무시하거나 보답하지 않을 때는
그 바람의 씨앗이 피어나 미움과 분노, 미련과 회한 같은 오욕칠정의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위하여’의 문제는 오늘을 내일을 위한 도구로 소외시키고,
또 나를 나로서 살아버리지 못하게 만들고, 나아가 상대방에게 내 욕망을
투사시켜 상대를 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타락시키는 데 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위민爲民’보다는 ‘여민與民’이 낫다는 생각이 있는데
여민이란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
결국 ‘위하여’보다는 ‘더불어’가 더 낫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위하여’는 남을 위하여 자기가 희생한다는 마음이 있고,
자기를 희생할 때는 반드시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서
위하여 뭘 하고 반대급부가 없으면 남을 위한다는 사랑의 마음이
오히려 미움, 분노, 아쉬움 같은 반대감정으로 바뀐다는 것으로
우리 인간사에서 많이 보는 거고 그래서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요.
사실 동고동락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민동락/더불어 사랑’도 위대합니다.
프란치스코도 나병환자들 가운데서 더불어 자비를 실천했다고 유언에서
얘기하듯 밖에서 따로 살며 위하여 뭘 조금 하는 것도 사랑이지만
나병환자들 가운데서 전적으로 더불어 사는 것이 더 위대합니다.
그런데 오늘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죽으셨고
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분을 위해 살라고 다그친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그리스도의 ‘위하여’ 사랑을 위의 얘기처럼
세속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우리 신앙인이 이해해서는 안 되고
‘위하여’ 사랑을 도매금으로 평가절하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위하여’ 사랑이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위하여’ 사랑에는 두 가지 급이 있습니다.
보상을 바라는 ‘위하여’ 사랑 그래서 실제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는 것인 하급사랑이 있고 사실 상당수가 그런 사랑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모두를 위하는 상급사랑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최상급 사랑이 있습니다.
상급사랑은 모두를 위하는 사랑이라고 제가 얘기했습니다.
어떤 특정한 누구를 배제하지 않고 무엇보다 자기를 배제하지 않습니다.
정말 모두를 위해 살기에 그것이 남을 위해 자기만 희생하는 것이 아니며
결핍에서 비롯된 사랑이 아니고 하느님 사랑의 충만에서 비롯된 사랑입니다.
애정 결핍자는 사랑을 하되 자기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사랑을 합니다.
이것이 하급사랑인데 상급사랑은 사랑이 차고 넘쳐서 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나 강아지를 사랑할 때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지만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보상이고 사랑할 때 주어지는 만족이 보상이듯이.
(맹세의 심리)
http://www.ofmkorea.org/126126
17년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겸손한 것도 좋지만!)
http://www.ofmkorea.org/105498
13년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하느님 앞에서 떳떳하면 됐지)
http://www.ofmkorea.org/54300
1)승용차로 오실 경우 주소: 구로구 구로중앙로 28길 53-28.
2)대중교통으로 오실 경우: 1)신도림역 3번 출구. 영등포 9번 마을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 가서 <거리공원, 하나은행 구로지점>에서 내림.
신도림역 3번 출구와 거리공원 하나 은행 앞 정거장에 <여기 선교의 집> 손팻말을 든 안내자가 있겠습니다.
구로역은 엘리베이터나 에스칼레이터가 없어서 연세드신 분들이 오시기 힘듭니다. 그래서 구로역으로 오지 마시고 꼭 신도림역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구로역에서 오는 것은 안내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