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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헌화 :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by 이종한요한 posted Jun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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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봉헌화 (Ex voto)

   가 : 프리다 칼로 (Frida Kahlo : 1907-1954)

크   기 : 목판 30X20cm

소재지 : 멕시코 프라다 칼로 박물관 


인생의 모든 영역이 다 그렇듯 예술의 영역 역시 너무 방대해서 작가의 생애 역시 너무 다양하나 프리다 칼로의 삶은 어느 예술가와 비길 수 없을 만큼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독일 계통의 아버지와 원주민 혈통의 부모를 둔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의 총명함과 자질을 인정받으면서 밝은 미래가 열려 있었다.


그러나 어릴 때 소아마비 증상이 생겨 고생도 했으나 이것을 극복할 만큼 그의 재능과 행운이 받쳐주었기에 당시 멕시코에서 처음 시작된 수재들만의 집합소인 국립예비학교에 합격해서 전교생 2000명 중 여학생이 불과 35명밖에 안 되는 바늘구멍을 뚫은 것이다.


 대학 과정에 거뜬히 합격하면서 장밋빛 인생이 약속되었으나 어이없는 교통사고로 이 모든 꿈이 박살나고 말았다.


18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모든 장밋빛 꿈이 박살나는 처지가 되었으며 이때부터 미술에 대한 그의 재능이 꿈틀거리기 시작해서 침대에 누워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자화상 밖에 없기에 침대 위에 놓인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이런 특수 환경에서 시작되었기에 다른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자기가 처한 특수한 환경과 체험에서 영글은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그녀는 47년을 살면서, 서른 두 번의 수술과 세 번의 유산,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사랑했던 예술의 스승이며 연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bera)의 지속적인 외도에 마음이 찢기는 상처를 받아야 했다.


그가 남긴 작품 143점 중 55점이 자화상일 만큼 그의 작품은 철저히 자기 내면화에 집중하고 있기에 진실을 직시하는 삶을 살았다. 


자기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잔인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에게 주어진 신체적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이것을 작품을 통해 승화시켰기에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인간의 깊은 내면에 접근하면서 충격과 감동을 주고 있다.


그는 자기의 예술 스승이면서 연인이었고 당시 멕시코 정부가 국민 의식 계발의 도구로 장려하던 벽화 제작에 독자적 존재로 부각되고 있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에 선명히 드러나는 멕시코 혁명의 작품성에 철저히 공감했다.


멕시코는 1910년부터 1917년까지 스페인 식민 정치에서 영글어져 대물림을 하고 있던 악질적인 정치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농민들과 원주민들이 일으킨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있었고 이때 가톨릭교회와 성직자들은 선량한 인민들을 착취하고 괴롭히는 제거 대상으로 전락되었다.


당시 멕시코 재산의 75%를 가톨릭교회가 소유하고 있었기에 교회 재산의 몰수가 혁명 공약의 중요 공약 내용이 되었고 사실 이때부터 교회의 모든 재산은 국가 소유가 되었다.


이런 부패한 교회 현실에 실망하였던 생각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공산주의로 넘어갔기에 작가 역시 공산주의가 되었는데, 이것은 오늘 우리나라에서 우파들이 강조하는 빨갱이라는 그런 공상의 악마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교회가 복음을 실천하지 않으므로 가난한 사람을 인권과 존엄을 강조하는 교회 밖의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강조하던 집단이 되었다.


작가는 자신이 겪어야 했던 극단의 신체적 불편과 고통을 동반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작품을 시작했기에 노골적이며 직선적인 면이 강해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으나 예술에 대해 기대하는 낭만성의 표현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예술의 세계에서 추구하는 낭만성에 있어선 부족이 있을 수 있으나 그가 깊이 공감대와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던 혈통에서 나온 인디언 예술의 상징성과 은유성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에서 우러난 자신의 통찰을 작품에 담았기에 충격적인 감동과 함께 다른 작가들에게서 볼 수 없는 원주민들을 삶에서 깊이 드러나는 서정성도 도입해서 교훈적인 내용이 줄 수 있는 감동을 느끼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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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개하는 봉헌화는 중세부터 유럽 가톨릭 교회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스페인 신민 시대 교회를 통해 멕시코에서도 성행했던 성화의 한 형태이다. 쉽게 표현해 평범한 신자들이 삶의 여러 정황에서 특히 어려운 순간에 하느님의 현존과 안배로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감동적인 표현이었다.


한마디로 하느님의 은혜에 대한 시각적 표현의 감사였기에 이것은 작가의 기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표현하는 신앙의 내용이 더 중요하기에 어떤 작품성을 기대하기 보다는 이것을 표현하는 신앙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성서에 많은 난치병자들에 치유를 베푸신 예수님의 손길처럼 어려운 병고에서 치유 체험, 교통사고나 전쟁의 참화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된 체험, 일상 삶에서 예기치 못하게 당해야 했던 여러 사고에서 위기에서 구원, 가정이나 가족들이 어려움에서 벗어난 것 등 일상 삶의 어려운 상황에서 하느님께 의탁하거나 성모님의 도움으로 해방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쳐진 것이다.


한마디로 신앙의 내용보다 신앙을 통해 이루어진 은혜 체험을 기억하면서 감사하는 것이 내용이다.

작가는 의식이 들면서 공산주의에 심취하게 되고 남편이며 연인인 디에고 리베라의 영향으로 공산주의로 이어지는 무신론이 그의 인생 철학이 되었다.


국가의 토지와 부를 독점하면서 가난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그에게 있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 이론의 파편에 불과하기에 그의 작품에서 종교적인 주제나 작품성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타가 공인하는 작가가 바로 가톨릭교회의 영향으로 멕시코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에게 애장되고 있던 이 봉헌화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 여러 형태의 봉헌화를 약 400점정도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은 작가의 삶에 내재하고 있는 새로운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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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봉헌화 중 작가가 그린 것도 있고 다른 사람이 그린 것을 작가의 취향에 따라 약간의 개작을 한 것도 있고 작가가 감동을 받은 작품으로 여겨 수집한 것도 있지만 무신론자의 소장품이라고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가 자기 삶에 있었던 충격적인 교통사고에서 살아남은 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다.


18세 때 여성으로서 자신의  엘리트 양성을 위해 처음 시작된 대학에 합격하면서 여성으로 장밋빛 인생의 꿈에 들뜬 작가를 무참하게 박살낸  교통사고의 현장을 성모님이 슬픔 표정으로 지키고 계셨다는 이 표현은  소위 열심하다는 신자들에게 드러나는 것과 다름없는 종교성의 순수한 표현이다.


이 순간 작가는 왜 하느님께서 무죄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셨는지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그 순간을 어머니처럼 슬픈 모습으로 바라보고 계신 성모님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삶의 위안과 희망을 자극받고 있다.


이처럼 그는 자기 삶에 있었던 불운한 사건들의 방향을 신앙인들과 다름없는 방향으로 표현하고 있었으며 그는 제도적 종교의 신앙인과 다른 형태의 표현을 통해 하느님과 어떤 연관을 유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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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성격과 이성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그는 먼저 제도적인 종교가 가르치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선 절대적인 거부의 태도를 보였다.


신자라는 이름의 집단 구성을 위한 인원을 확보하기 위해 죄와 내세에 대한 공포감과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이상하고 해괴한 교리나 그의 판단엔 미신 수준의 내용을 교리로 가르치는 종교에 대해 그는 어떤 동조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자기 인생에 있어 이런 제도적 종교의 틀에 메이지 않는 신과의 관계를 유지했기에 이런 발상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봉헌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종교심은 오늘 제도적인 종교의 현실이 표현하고 있는 종교심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다.


특수한 유사 종교를 제외하고 많은 기성 종교는 신자들이 떠나고 있고 가톨릭교회 역시 소위 수계 신자들의 숫자가 급감하고 있는 염려스러운 현실이다. 우리 가톨릭교회가 표현하고 있는 수계 신자의 척도가 현대에 있어 신앙의 진정한 표현이 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주일 미사 참례나 성사생활을 하는 것이 곧 수계 신자의 범위에 넣는 현실에서 작가가 보이고 있는 태도와는 또 다른 어떤 허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제도적인 교회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그 나름대로 진실하고 정직한 삶을 어떤 반대나 어려움 속에서도 자기 신념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았으며 그는 죽음의 순간에도 제도적인 교회로 돌아오지 않고 공산주의자로서의 인생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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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47년의 길지 않는 인생에서 32번의 수술 3번의 유산을 해야 할 만큼 육체적인 갈등을 겪은 것과 함께 남성과 여성을 동시에 사랑하는 양성애자로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야 했다.


양성애자로 살아가면서도 디에고 리베라의 삶은 끈기 있는 집념으로 사랑하는 갈등의 삶이었다. 이런 갈등이 그에게 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이런 갈등 속에서 제도적인 교회를 거치지 않고 신앙심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봉헌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볼 수 있겠다.


이런 면에서 그는 제도권 밖의 하느님 백성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많은 약점과 어려움 속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매달리며 감사를 느낀 삶이 그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익명의 크리스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교회가 간과했던 크리스챤의 중요한 모습이며 ‘실천적 무신론자’ 라는 말과 반대되는 신앙인의 모습이다.


예나 오늘이나 교회 안에는 성직자 평신자들 아울러 입으로는 그럴듯한 이론을 제시하면서 실천과 실재 삶에선 전혀 비 신앙인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가는 외침의 신앙인이 늘어가고 있으며 이런 신자의 삶을 통해 예수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실망을 주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복음화의 큰 문제점으로 현존하고 있다.


예수님이 그토록 싫어하신 위선자들의 모습이 오늘도 교회 안에 포진하고 있으며 이것은 숫자 이전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시해서 교회안의 요직을 맡은 사람들에게 더 강하게 드러나기에 사람들이 순수한 삶을 살고자 교회를 찾은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떠나거나 교회에 들어오기를 주저하는 안타까운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신앙과 상관없이 양심과 이성적 판단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만나면서 종교인으로 감동을 받을 때가 있고 또 이런 사람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세상의 빛과 소금”을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가의 봉헌화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인생을 이해하는 데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이면서 각자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이것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에 빠져 쉽게 간과되고 있는 중요한 작가의 종교성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작가가 공산주의자로 일관했기에 종교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는 결론이 아닌 작가 안에 일생을 계속되었던 종교심을 확인함으로서 작가의 인생과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게 만드는 좋은 분야라 볼 수 있다.


구약의 시편에 자기의 힘으로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처지를   하느님의 은혜로서 극복한 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친 다음과 같은 기도가 있다.


이 봉헌화를 보면서 작가가 그 어려운 교통사고의 고통과 여러 어려움에서도 한 인간으로 작가로서 무너지지 않는 인생을 살았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주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안의 온갖 것도 그 이름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당신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말라.

내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네 모든 아픔을 낫게 하시니 죽음에서 네 생명 구하여 내시고 은총과 자비로 관을 씌워 주시는 분“(시편 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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