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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토요일

by 김명겸요한 posted May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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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미워하고,
그 제자들의 스승인 예수님도 미워합니다.
즉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이 이야기하는 것에
편들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세상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은,
더 나아가 하느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빛이 이 세사에 왔습니다.
하지만 그 빛에 응답하는 모습은
조금씩 달랐다고 로고스찬가는 이야기합니다.
누구는 그 빛을 받아들였지만,
누구는 그 빛을 거부했습니다.
빛을 통해서 우리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데,
특히 내 안에 있는 어두움,
감추고 싶은 약점이 드러납니다.
누구는 빛을 받아들여
내 안에 있는 어두움을 밝게 만듭니다.
그러나 누구는 감추고 싶은 약점을
숨기고 싶어서
빛과 등을 지고,
빛에서 멀어집니다.

그 빛은 세상 어느 곳에나 있다보니,
빛을 거부하고 싶은 사람은
점점 숨을 곳이 줄어듭니다.
행동할 수 있는 공간도 줄어들다보니
행동이 점점 부자연스러워지고
불편해집니다.
이 모든 것이
빛이 이 세상에 와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빛이 점점 싫어지고,
그 빛을 받아들여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들도 미워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의 행동에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도 보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명예, 돈, 권력 등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빛을 통해 밝음을,
밝음이 주는 행복을 누리면 되는데,
오히려 그 빛 때문에
더 깊은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것,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삶에서
단순한 선택 하나로 벌어집니다.
인간적인 실수 앞에서
사과할 수 있는가입니다.
물론 그 사과가 쉽지는 않습니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우리 사회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없고,
그렇기에 잘못에 대한 인정도
섣불리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말은
사람을 로보트로 만듭니다.
능력의 한계에서 오는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그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즉 나 스스로는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에 의한 잘못도 인정하지만,
사회가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기에,
또 다시 나의 한계를 감추고
숨겨야만 하는 쪽으로 바뀌어 갑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어려움에도
사과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입니다.
바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스스로 빛을 향해 걸어나오는 방법이고,
이것만큼 영리한 삶의 방식도 없을 것입니다.
바보가 되는 길,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길만큼 행복한 길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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