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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부활 제4주일

by 김명겸요한 posted May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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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은
주님의 양입니다.
즉 주님께 속해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다른 한편으로는
주님께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오늘 복음의 앞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인지 묻는 유다인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들어도, 보아도, 믿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들은 주님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의 행위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즉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것은
주님을 믿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됩니다.

이처럼 요한복음에서는
안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서
주님을 안다는 것과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항상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많이 알지만
신앙심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믿음이 굳건한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주님의 양은
주님을 따릅니다.
즉 하느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나의 부족함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됩니다.
그 부족함에도
나를 사랑해주심을 알기 때문에
더욱 하느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느님께 의지할수록
하느님과 더 가까워져서
하느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오히려 하느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지식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따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어려움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것에
있습니다.
예수님과 논쟁을 벌인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기에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을 알아가고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를 불러주셨기에,
우리에게 당신 목소리를 들려주셨기에
우리는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 알아들음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은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알면서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무한하심 때문에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아시는 우리의 목자는
우리의 한계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당신께서 먼저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그 과정 중에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가고
천천히 그분을 믿는 여정을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그 길이 지루하게 느껴지고,
때로는 옆길로 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따라가려고 노력할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으시고
당신께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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