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simonofm추기경님께서 남기신 말씀 중에 ‘나는 바보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당신 자신을 바보라고 말씀하신 뜻은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알아들었으나 그렇게 살지 못함을 스스로 탓하시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당신의 어리석음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느님의 어리석음입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란 말은 아직도 세상의 입장에서의 말입니다. 듣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이들이 아직 하느님을 모른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세상이 하느님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찬양하지만 아직 세상이 하느님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형식적 변화와 질적 변화의 간극을 직설적으로 위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어리석음인 십자가를 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깨달음 사람입니다. 나환자와의 만남이 깨달음의 때였습니다. 역겨웠던 그것이 바로 단 맛이 되었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당신 자신을 바보라고 말씀하신 뜻은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알아들었으나 그렇게 살지 못함을 스스로 탓하시는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당신의 어리석음으로 이루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느님의 어리석음입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란 말은 아직도 세상의 입장에서의 말입니다. 듣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듣는 이들이 아직 하느님을 모른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은 세상이 하느님을 규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찬양하지만 아직 세상이 하느님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형식적 변화와 질적 변화의 간극을 직설적으로 위선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어리석음인 십자가를 두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하느님의 어리석음을 깨달음 사람입니다. 나환자와의 만남이 깨달음의 때였습니다. 역겨웠던 그것이 바로 단 맛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