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가 되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호수로 내려가서,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 카파르나움으로 떠났다.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가지 않으셨다.”
어쩌자고 제자들은 주님 없이 길을 떠났다는 말인가?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들은 주님 없이 길을 떠난 것인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은 당신을 왕으로 앉히려는 군중을 피해
산으로 가셨는데 주님은 왜 거기서 홀로 기도를 하셨고
제자들은 왜 주님을 놔두고 자기들끼리 길을 떠난 것일까요?
주님께서 ‘나는 기도할 테니 너희들끼리 가라!’고 하신 걸까요?
아니면 자기들끼리 작당을 하고 떠난 걸까요?
그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는 알 수 없는데
우리 공동체들도 이 제자들 공동체처럼 주님 없이
여정을 떠날 수 있음을 성찰케 하는 오늘 복음입니다.
사실 우리 공동체가 주님을 떼놓기로 작당을 하지 않고도
주님 없이 어딘가를 향해 떠나 갈 수도 있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고 표류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 없는 공동체를 말 그대로 풀이하면 무신론 공동체인데
우리 공동체가 <무신론 공동체>라고 하면 모두 깜짝 놀라며
‘우리 공동체가 설마 그럴 리가!’라고 할 수도 있지만
주님 없이 우리가 어딘가를 가면 의도치 않았어도 무신론 공동체인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 없이 가다가 언젠가는 풍랑을 만나고 표류할 것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우리 공동체가 표류를 하고 있다면 주님이 없기 때문인데
자기들의 표류가 주님이 안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고 그저
외부 풍랑 때문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들의 불일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이렇게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찾지 않고
그저 인간적인 이유에서 찾는 것이 바로 무신론적인 공동체인 것입니다.
제가 자주 얘기하지만 가정 공동체건 수도 공동체건
공동체가 갈등이나 분열이 있고 그래서 표류할 때
그것이 구성원들이 미성숙하다거나 상처 받은 사람이 많다거나
구성원 간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공동체가 무신론적으로 이렇게 인간적인 데서만 그 이유와 원인을 찾으면
그 해결방식도 무신론적일 수밖에 없고 신앙 공동체로 부활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의 갈등과 어려움이 새로운 공동체로 거듭 나는데
계기가 되지 못하고 부활의 공동체가 되는데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사도행전의 공동체는 훌륭한 모범입니다.
초대교회 공동체도 구성원 간에 갈등이 있었고,
어떻게 보면 그 이유가 참으로 유치했습니다.
식량배급 문제였고 차별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신앙공동체일지라도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이유 때문에 갈등이 생겼더라도
우리 공동체가 어떤 상태에 있고 왜 이런 갈등이 생겼는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곧 신앙의 눈으로 보고 해법을 찾으면
그것이 신앙의 공동체이고 오늘 주님을 맞이한 제자들의 배처럼
공동체의 갈등과 표류는 이내 끝나고 목적지에 올바로 도착할 것입니다.
그러니 갈등이 있는 것을 너무 걱정할 것이 아니고
갈등 가운데 주님이 안 계신 것이 걱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동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