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여러분은 엠마오를 갔다 오셨습니까?
오늘 복음은 엠마오를 향해 가는 두 제자의 얘기인데
부활하신 주님을 절망과 포기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얘기입니다.
저는 엠마오로 가는 길을 절망과 포기의 길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엠마오로 간 것이 딱히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곳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절망을 더 깊게 하고 포기를 더 빨리한 결과로 떠난 것이기 때문인데
그러므로 이 여행은 희망여행이 아니라 절망여행이지요.
그렇다면 두 제자는 다른 제자들에 비해 왜 더 깊이 절망하고,
왜 더 빨리 포기를 하게 되었을까요?
제 생각에 그것은 두 제자가 인간에게 기대를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예수께 대한
그들과 다른 제자들의 호칭의 차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그저 예언자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이에 비해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합니다.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은 이 두 제자가 자기들에게 다가와 같이 길을 가신
주님을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고 하는데
눈이 가리어진 것은 이때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가리어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를 포함하여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주 그리스도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오늘 복음에 앞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전했을 때 제자들은 헛소리한다고 생각했고 그래도 베드로는 무덤에 가서
확인을 했지만 빈 무덤만 확인하고 놀라워했지만 믿지는 못하였는데,
그런데 그 사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오늘 복음에서는
주님께서 되살아나셨다고 하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을 한낱 예언자 정도로 알았기에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그들은 인간의 구원이건 민족의 해방이건 모두 다 끝났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생각했기에 아무런 믿음이나 희망도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인간에 의한 민족의 해방을 기대했고 그 기대가 무너져
희망을 잃고 목적을 잃은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가가
당신은 민족의 해방자가 아니라 인간의 구원자이심을 깨우치십니다.
그래서 두 제자도 이제는 다른 제자들처럼 예언자가 줄 수 없는 희망을
구원자로부터 찾게 되는데 사도들은 다 이 인간구원을 체험한 제자들이고
이들이 이제는 사도로 구원의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오늘 독서 사도행전에서 잘 나오는데 성전 입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베드로는 다른 것은 줄 것이 없고 오직 자기가 가지고 있고
그래서 줄 수 있는 것으로, 돈이 아니라 주님을 주겠다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우게 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는 가난, 질병,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원자이신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러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고 그래서 줄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또
오늘 엠마오 두 제자처럼 구원자 주님을 체험해야 한다는 겁니다.
엠마오 체험은 그러므로 엠마오로 가는, 지리적인 길의 체험이 아니라
인간적 기대가 무너져 절망하고, 절망에서 구원을 찾는 인생길의 체험이고,
그러므로 하루 여정에서의 체험이 아니라 전 인생 여정의 체험이며,
무엇보다도 단순한 희망체험이 아니라 구원자에 대한 인격체험인데
여러분도 이 엠마오 여행을 한 번 떠나시겠습니까?
이미 다녀오셨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