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가 향유를 가져다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복음사가가 이야기 하듯이
그 향유는 비싼 향유이며,
양도 적은 양은 아니었습니다.
유다의 말에 의하면
꽤 값어치가 나갔습니다.
마리아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니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소중하고 귀한 향유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렸을 것입니다.
물론 마리아는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 부어드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더 설레었을 것입니다.
나의 가장 귀중한 것을
내가 사랑하는 그분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며,
하루라도 한 시라도 빨리
그렇게 해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의 사랑,
그것은 오빠를 되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에서
더 커졌을 것입니다.
물론 요한복음 11장의 라자로의 소생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 그 가족들을 사랑하심이 표현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고,
더욱이 오빠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마리아는 점점 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 사랑의 표시로
마리아는 급기야 향유를 쓰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기준이
점점 사랑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자리 양보를 한다고 해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라기보다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점점 삶이 여유가 없어지고
그러면서 마음의 여유도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도
점점 잊혀지는 것 같습니다.
조금 쉬어가면서
한창 피고 있는 꽃들이나
따스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때,
다시금 우리도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