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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나누기

사순 제1주간 목요일

by 김명겸요한 posted Mar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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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하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드신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아들의 청을 아버지가 들어주듯이,

 우리의 청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친구 혹은 아는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관계가 없는 사이라면

 내가 청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는

 어떻게 보면 가장 가까운 관계이고,

 그래서 조금은 더 쉽게,

 때로는 의무감에서라도

 그 청을 들어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 때,

 우선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자로서의 의무도 잘 지키지 못하는데,

 필요할 때만 주님, 주님 찾으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시겠냐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물론 이것과 비슷한 말씀이

 복음서의 다른 곳에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하느님을

 너무 옹졸한 분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과의 관계를 보자는 말은,

 우리의 의무를 다 한 다음에

 권리를 주장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하느님께 마음 놓고 편하게

 청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아버지의 자녀로서 아버지께 어리광을

 부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자는 말입니다.


 청하면 다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스스로 하느님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

 청하지 못하고,

 그래서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 되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급하면,

 이것 저것 잴 수 없습니다.

 내가 미사에 잘 나왔건,

 기도를 열심히 하는 신자이건,

 이런 것이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청하게 되고,

 하느님께 의지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하느님과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하느님께 원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사실 하느님과 가까워진 상태에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아도

 그것이 서운하지 않기도 합니다.


 때로는 급한 불을 끄고 나면

 다시 하느님과의 관계를

 멀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더 더욱 하느님께

 다시 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필요에 따라 하느님과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하지만 그러한 것이 반복되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조금씩

 두터워집니다.

 내가 하느님을 나의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다면.

 아니 적어도 하느님께서 나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우리에게는 언제나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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