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오늘 주님의 말씀은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데
같은 내용이지만 두 복음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비유를 밖에 있는 군중에게 말씀하시고는
안으로 들어오시자 제자들은 안으로 들어와 그 뜻이 무엇인지 묻고,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고 나무라듯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이것이 마태오복음에는 없습니다.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듯이 마르코복음의 주님은 모두에게 비유를
들려주시긴 하지만 툭 던져주시곤 알게 하려고 애쓰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해도 답답해하지 않고
그래서 더 이상 알려고 들지도 않고 당연히 묻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주님의 말씀을
깨달아 이해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마르코복음사가의 생각이기에
제자들은 안으로 주님을 따라 들어와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데
주님께서는 일단 너희도 깨닫지 못하냐고 핀잔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바로 핀잔을 듣는 제자들과 같이 깨닫지 못한 사람이고,
그러나 우리도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제자들처럼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할 때 답답해해야 하고, 알고 싶어야 하고, 물어야겠지요.
뒤집어 얘기하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런데도 답답하거나 알고 싶지 않고 묻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아님은 물론 될 수도 없는 거지요.
다음으로 비유를 풀이해주시는데 이것도 마르코는 마태오와 다릅니다.
마태오나 마르코 모두 입으로 들어가 뒤로 나오는 것이 더럽지 않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고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마태오의 것과 마르코의 것이 다릅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나쁜 생각들, 살인, 간음, 불륜, 도둑질, 거짓 증언, 중상이
마음에서 나오는 거라고 하는데 십계명의 대인 계명에 해당하는 것들입니다.
이에 비해 마르코복음은 이것들 외에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교만,
어리석음을 더하는데 제 생각에 이 일곱 가지가 뿌리가 되는 죄들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랫동안 죄 중에서 뿌리가 되는 죄, 다시 말해서 다른 죄들의
뿌리가 되는 큰 죄를 일컬어 칠죄종七罪宗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교만, 질투, 분노, 음욕, 탐식, 탐욕, 나태이고, 이것이 오늘
마르코복음에서 얘기하는 일곱 가지 죄와 많이 일치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자주 주장하듯 탐욕과 교만은 이 뿌리가 되는 죄 중에서
대표적인 죄로서 여기서 거의 모든 죄가 생겨납니다.
이 죄들에서 살인, 도둑질, 간음, 중상 등이 생겨난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 마르코복음의 뿌리 죄들 중 하나가
어리석음이라는 것이 있고 이것이 칠죄종 중에는 없으며
반대로 칠죄종 중에는 나태/게으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리석음은 죄라기보다는 약점 또는 부족함 중의 하나이고,
나태/게으름도 죄라기보다는 허점이나 부족함 중의 하나인 것 같은데
그 자체로도 죄일 뿐 아니라 다른 죄를 낳는 뿌리 죄라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어리석음이나 게으름은 자기 인생을 망치는 것일 뿐
남을 크게 해치거나 적극적으로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기에
죄가 아니고 뿌리 죄는 더더욱 아닌 것 같은데 불교에서도,
그리고 오늘 마르코복음에서도 어리석음을 죄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그런 약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하느님께 그리고 우리 인생의 중요한 것에
불성실하고 깨어있지 못하는 그래서 인생을 치명적으로 그르치게 만드는
뿌리 죄라는 것인데, 이것을 깨닫고 깊이 반성하는 우리이고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