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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어라

by 김대우 posted Nov 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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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깨어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올지 모른다고 잠을 안 자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루 이틀이야 가능하겠지만 언제까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깨어있음은 이런 물리적인 것보다는 관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가 아버지와 그 자녀로 온전히 형성됨을 말합니다.
그러면 설령 내가 졸고 있고 비록 잘못하고 있었다 해도
그분의 오심이 심판과 책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지금 자문해 봅시다.
내 마음 속 깊은 속에서부터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아버지라고 되뇌는 나의 말이 마음에서 어떻게 느껴집니까?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엄청난 곤경에 처해있습니다.
페르샤 왕 고레스가 칙령을 반포하여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왔으나
경제적 곤궁(60,17; 62,8-9), 정치적 불안정(60,10.18),
폐허지와 황폐화(61,4), 점점 더 가중되는 모욕(61,7; 62,4) 등으로
더 이상 피해갈 곳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막다른 궁지에 몰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시대와 흡사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처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실 구약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주님, 당신만이 저희 아버지이시고…”(이사 63,16)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나타내줍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탄원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
저희는 오래전부터 당신께서 다스리시지 않는 자들처럼,
당신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자들처럼 되었습니다.
아, 당신께서 하늘을 찢고 내려오신다면!
당신 앞에서 산들이 뒤흔들리리이다.”(이사 63,17.19)

그리고 탄원이 끝나면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저희는 죄를 지었고, … 모두 부정한 자처럼 되었고, …
저희의 죄악이 바람처럼 저희를 휩쓸어 갔습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경배 드리는 자 없고,
당신을 붙잡으려고 움직이는 자도 없습니다.”(이사 64,4-6)

사실 이스라엘이 여러 죄를 지었겠지만 더 큰 죄는 바로
하느님을 부르지도 않고 붙잡으려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죄에 대한 인정은 탄원에서 신뢰로 넘어가도록 이끌어줍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은 저희 아버지십니다.
저희는 진흙, 당신은 저희를 빚으신 분,
저희는 모두 당신 손의 작품입니다.”(이사 64,7)

처음에 나온 아버지라는 말은 하느님을 진정 아버지로 고백했다기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어려워
이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한 몸부림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치 어린이가 아버지께 투정하듯이 자기가 죄를 지어놓고도
“어찌하여 저희를 당신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희 마음이 굳어져 당신을 경외할 줄 모르게 만드십니까?”라고 하며 도리어 하느님께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버지라고 고백할 때는 비중이 자신의 어려움에서
하느님께로 넘어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이스라엘은 투정에서 신뢰로 바뀐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귀한 체험을 합니다.

이 시대도 어느 때보다도 살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하느님을 멀리하고 떠나고 있습니다.
원망과 불신!

그러나 우리는 이스라엘에게서 배워야합니다.
우리도 이런 어려움 속에서 허심탄회(虛心坦懷)하게
우리의 속사정을 말씀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런 탄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신뢰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느님 앞에서 진솔한 자기 고백은
자신을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고,
그에 따른 겸허한 죄의 고백은
하느님께 대한 신뢰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럴 때 우리는 하느님을 진정 나의 아버지로 맞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의 권고대로 깨어있는 사람은
즉,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음의 말을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세주 빨리 오사”

우리는 대림시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 내내 “구세주 빨리 오사.”라고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노래합니까?
이것은 우리의 삶의 자리와, 즉 나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입으로만이 아니라 우리 삶으로 구세주 빨리 오사를 노래합시다.

“깨어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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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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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쥬라블 2008.12.01 07:50:35
    자신의 삶을 통한 아버지와 대화...
    그리고 죄의 고백과 삶으로의 돌아 옴...
    묵상 잘 하고 떠납니다.
  • ?
    홈페이지 당쇠 2008.12.01 07:50:35
    먹기 좋게 자근자근 씹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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