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올해가 2019년이라고 하는 것에 별 생각이 없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이것에 매우 거부감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은 그런 것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과거의 저는 매우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이어서 우리가 서양달력을 쓰는 것을 매우 자존심상해 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것은 서양달력이 아닙니까?
올해가 단기檀紀로 치면 4352년인데 2019년이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겨레는 단군이 세상을 연 때를 기원 삼아야 하는 것이고
불자들은 부처님이 오신 때를 기원으로 삼아 2563년이라고 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2019년이라고 하고 전 세계가 서양달력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신앙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날이 기준이 되어
그 이전을 기원 전 몇 년이라고 하고 올해는 기원 후 2019년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건 믿지 않건-하는 것이니 뿌듯합니다.
그런데 더 생각을 하면 우리의 시간은 주님이 오신 것을 기준으로 삼는데
우리의 삶도 주님이 오신 것을 기준으로 삼느냐는 더 따져봐야 합니다.
올해 2019년은 주님께서 내게 오신 해이고,
그래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해입니까?
아니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첫 출발을 하는 해이고
정년퇴직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해입니까?
오늘부터 저는 모 수도회 종신서원 준비피정 지도를 하는데
이분들은 올해가 종신서원을 하는 해이지요.
이분들에게는 2019년이 매우 뜻 깊은 해입니다.
그런데 올해가 중요한 것이 그저 종신서원으로 전과 다른 삶이 시작되기에
뜻이 깊고 중요한 것입니까, 아니면 종신서원으로 멀리 있던 하느님 나라가
전과 달리 정말로 가까이 오는 해이기 때문에 뜻 깊고 중요합니까?
오늘 주님께서 ‘때가 찼다’고 하신 것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물리적인 시간, 곧 Chronos가 어느 시점에 왔다고 하신 것이 아니고
의미적인 시간, 곧 Kairos가 무르익었다는 뜻이지요.
아무튼 우리에게 올해는 어떤 해입니까?
그저 2019년입니까?
아주 의미가 있는 해입니까?
있다면 어떤 의미가 있는 해이고
지금 내게는 어떤 것이 의미가 있습니까?
황금 돼지가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 없던 하느님 나라가 의미가 있어졌고,
그래서 멀게만 느껴졌던 하늘이 가까이 다가오는 해입니까?
이것을 생각게 되는 오늘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 오늘도 해야 헐 일 속에서 주님을 부르고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