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의 전례는 독서로 다음의 이사야서를 읽습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당신의 양들을 소중히 여기시는 목자 주님,
길 잃은 양을 찾아오시는 착한 목자 주님에 대해 얘기합니다.
언젠가 99마리 양을 놔둔 채 한 마리 양을 찾으시는 오늘 복음의
주님 사랑을 이해시키기 위해 주님은 길 잃은 한 양뿐 아니라
길을 잃을 이 양, 저 양 모든 양을 찾으시는 분이라고 했더니
‘이 양, 한 양만 찾지 마시고 신부님은 김 양, 정 양도 찾아주세요.’
하고 어떤 분이 아주 재치 있게 제게 농담을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주님은 한 마리 양을 위해 다른 양들을 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 마리, 한 마리의 양도 길을 잃게 되면
마찬가지로 찾으실 주님이고 그래서 백 마리 모두 찾아 돌보실 주님입니다.
사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길 잃은 양일지 모릅니다.
어제 말씀 드렸듯이 주님을 찾지 않고 점쟁이를 찾으면 길 잃은 것이고,
주님 말씀 받들지 않고 정치가의 선동을 따라가면 길 잃은 양이고,
주님을 따라가지 않고 이 세상 풍조를 따라가면 길 잃은 양이고,
주님을 따르지 않고 친구 따라 강남을 가도 길 잃은 양이지요.
구약은 이렇게 길을 잃는 우리에게 경고도 하고 권고도 합니다.
역대기는 “네가 그분을 찾으면 그분께서 너를 만나 주시고, 네가
그분을 버리면 너를 영영 저버리실 것이다”(역대 상 28,9)고 경고하고
예레미야서는 “너희가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내가 너희를 만나 주겠다.”(예레 29, 23-4)고 권고하고
이사야서도 “만나 뵐 수 있을 때에 주님을 찾아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불러라.”(55,6)하고 권고합니다.
이렇게 경고도 하고 권고도 하는데도 우리가 주님을 찾지 않고
그래서 길을 잃게 되면 벌을 받아 버림받을 거라고 구약은 얘기하지만
신약의 주님께서는 구약과 달리 그리고 율사들과 바리사이들과 달리
버리지 않고 우리를 찾으신다고 신약은 얘기하고
이렇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대림절의 교회는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가 주님을 찾지 않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겁니다.
그런데 바보 같은 질문인지 모르지만
주님을 찾지 않는 우리를 주님께서는 왜 찾아오시는 겁니까?
우리는 마음대로 길을 이탈하여 떠나간 놈이니 버리자 하는데
주님께서는 그 괘씸한 놈을 왜 찾아오시는 겁니까?
그것은 길 잃은 양을 잃은 양이 아니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길 잃은 양은 자기가 길을 잃은 양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찾지 않으면
우리가 잃은 양 또는 잃어버린 양이 되고 더 나아가 그것은
단지 양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 되기에
고갈되지 않는 사랑을 가지신 주님은 결코 잃을 수 없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랑은 고갈되어 길 잃은 양을 우리가 잃어버리게 되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이 고갈되실 리 없으시니 어찌 양을 잃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부모도 자식에 관한 한 그럴 수 없는데 하물며 주님이 어찌?
주님은 이렇게 길 잃은 양을 영영 잃어버리지 말라시는데 우리는 지금도
공동체를 떠나겠다는 형제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하며 붙잡지 않고
이미 교회를 떠난 사람은 찾지도 않는 우리가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